사춘기, 방황 대신 우리가 했던 일들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는 것은 소리로 알 수 있다. 조용히 바닥을 흐르던 시냇물은 얼음 사이로 난 틈을 벌려 봄의 왈츠를 연주하고, 움츠러들던 몸이 나도 모르게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켜는 봄이 되면 나는 들로 나선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찬바람을 이마로 밀고 다니며 서서히 다가오는 봄을 찾아 오늘도 골짜기를 누빈다. 나뭇가지는 빨갛게 꽃봉오리 매달고 때를 기다리고, 미처 녹지 못한 눈 사이로 얼레지는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골짜기를 흐르는 물에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뭔가가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물속에 잠긴 돌이 있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다리를 넓게 벌리고 물속에 손을 넣어 돌을 천천히 일으키면 움직이는 물결 따라 바닥에 가라앉은 부유물이 까맣게 일어난다. 흐르는 물에 까맣게 일어난 물은 금세 맑아지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개구리가 보인다. 겨우내 동면하는 개구리가 물속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손을 넣어 개구리를 잡아 올리면 무단 침입자에 놀라 꿈틀대며 힘껏 버틴다. 배가 양쪽 옆으로 불룩하고 노랗게 물든 암컷이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재빨리 양동이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차가운 물속을 휘젓는 손은 이내 빨갛게 물들어 간다. 그래도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돌무더기 몇 개를 더 들어내고 개구리를 잡는다.
개구리를 잡다가 이왕이면 물고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골짜기는 크지 않아도 제법 물고기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메기나 퉁가리, 빠가사리(동자개) 같은 매운탕거리는 제법 많았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자니 잡을 도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돌땅(돌로 물에 있는 돌을 내리쳐 물고기가 기절하게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쳐서 고기를 잡아보지만 피라미들만 보이고 매운탕 거리는 하나도 없다. 아직 물이 차가워 얕은 물에 고기가 없는 것 같았다. 물에 손을 넣다 뺐다 하는 사이 손만 빨갛게 얼어 참을 수 없이 손이 시렸다.
손은 빨갛게 얼어 있어도 따뜻한 햇살이 좋아 날씨는 그리 춥지가 않다. 손을 녹이며 물을 바라보는데 납작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물속에 있는 것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바위는 물이 약간 깊고 물살이 살짝 있는 곳에 있어서 장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다시 갔다 올까 고민을 하면서 바람 없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잠시 몸을 녹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때마침 친구 원이가 원이형과 같이 저만치 아래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원이는 물고기를 잡는 족대를 들고 있었고 고기는 두어 마리 정도 잡았는지 비료포대 바닥에 고기가 한 줄로 줄을 서 있었다.
"원아~!! 이리 와 봐~"
"어, 소향이 있었네. 왜?"
"내가 기가 막힌 돌을 하나 봤는데 족대가 필요할 것 같아."
"혹시 지렛대도 가져왔어?"
"어, 고기 잡는데 당연히 지렛대를 가지고 왔지. 그런데 왜 그러는데?"
"그럼 이쪽으로 빨리 와봐."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원이는 형과 같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나는 미리 봐 둔 납작한 바위를 가리키며 오늘 저 돌을 꼭 넘겨봐야겠다고 했다. 원이 형은 춥다며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우리 둘보고 해보라고 했다. 내가 지렛대를 잡고 원이는 족대로 바위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신호를 하면서 바위를 살짝 흔들었다. 그런데 누런 흙물이 생기면서 뭔가 도망치는 고기들이 많이 보였다.
"우와~, 뭐가 이렇게 무겁냐!"
"물살 때문에 무거워 보이는 거 아냐?"
"아냐,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다."
원이가 들어 올린 족대에는 20cm 전후의 메기들이 20여 마리가 들어 있었다. 일반적인 메기들은 그 색갈이 메탈 색 비슷한 회색빛이 도는데 족대에 들아간 메기들은 누렇다. 그것을 본 원이 형이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일단 원이 형이 족대를 빼앗아 자신이 들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소향아! 이거 장난 아닐 거 같거든. 천천히 두 번 정도만 흔들어봐."
"알았요. 좀 더 넓게 족대를 대봐요."
"자, 이제 흔들어 볼게요."
다시 지렛대로 두세 번 바위를 흔들었다. 우리의 예감이 적중한 것 같았다. 다시 엄청난 양의 메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원이 형이 무겁다며 투정을 할 정도로 메기가 족대 가득히 들어갔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잡으니 메기가 비료포대로 절반이 넘게 잡혔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메기들이 모여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크기도 비슷한 메기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양이 너무 많아지자 우리는 더 잡지 말고 다음에 와서 잡자고 했을 정도였다.
일단 잡은 고기 중 내가 가져온 양동이에는 내가 가져갈 만큼의 양을 담았고, 나머지는 원이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원이 형은 감당 못하니까 절반은 살려주겠다며 일부를 방류했다. 비료포대에서 쏟아지는 메기는 물살을 따라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우리들 손에는 아직도 감당하기 힘든 양의 메기들이 남아 있었다.
메기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 옷이 젖는지 손이 시린지도 모르고 있다가 그제야 추위가 엄습해 온다. 원이와 서둘러 마른나무를 구해오고, 원이형은 주변의 마른풀로 모닥불을 피운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젖은 옷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닥불로 언 몸이 녹자 슬슬 배가 고파온다. 모닥불도 좋고, 물고기도 있으니 생각나는 것은 숯불구이다. 나는 밖에 나갈 때면 주머니에 칼 같은 것은 꼭 챙겨서 다녔기 때문에 칼로 메기를 몇 마리 손질을 했다. 그 사이 원이는 산에서 싸리나무를 꺾어와서 껍질을 벗겨냈다. 칼로 다듬어 뾰족하게 만들어 나무젓가락을 만들어 손질된 메기를 숯불에 올려 굽는다.
화력 좋은 숯불에 올려진 메기는 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며 익어간다. 바라보는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군침을 "꼴깍~" 삼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침 넘어가는 소리에 서로를 보며 그만 깔깔대며 웃었다. 메기가 다 익자 한 마리씩 나누어 먹었다. 메기 살을 들어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새하얀 속살에 입에 침이 고인다. 후후 불어 한 입 베어 물고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 된다. 잡은 자리에서 구워 먹는 생선의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소금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소금이 없어도 따끈하고 촉촉한 메기살이 가져오는 맛은 지금까지의 추위와 고생을 다 씻어줄 환상의 맛을 허락해 주었다.
갑자기 원이 형이, 구워 먹고 싶다며 내 양동이에서 개구리 3마리를 꺼냈다. 사실 다섯 마리밖에 되지 않아서 살려줄까 하던 참에 메기를 잡느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원이형이 내 양동이의 개구리를 기억하고 꺼내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왕 굽는 거 다섯 마리 전부 구우라고 했다. 원이형은 알았다며 나머지 개구리를 마저 꺼내왔다.
개구리는 그대로 불에 넣으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온통 재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원이형은 개구리를 돌에 "딱~"하고 한 번씩 때려서 기절시켰다. 다리에 쥐 나듯 개구리는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며 쫙 뻗어 있다. 그런 개구리를 원이형은 그대로 숯불에 올려 굽는다. 숯불에 올려진 개구리는 기가 막히게 잘 구워진다. 타지 않도록 앞뒤로 뒤집어가며 굽는 것이 기술인데 원이형은 정말 잘 구웠다. 개구리가 다 구워지자 원이형은 불에서 꺼내 돌 위에 올려놓고 알아서 먹으라며 한 마리를 먹기 좋게 손질을 해서는 한 입에 넣고 맛있게 먹는다. 나는 한 마리만 먹고 나머지는 원이와 원이 형이 먹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개구리들이 벌레를 잡아먹고 하기 때문에 먹이활동을 하지 않는 겨울철에만 개구리를 잡아먹었다. 개구리라 하여 전부 다 먹는 것이 아니라 참개구리만 먹는다. 다른 개구리는 독이 있다고 해서 먹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 년 뒤부터 개구리를 산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시골에 개구리들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서 개구리를 잡지 못하도록 단속을 했다. 아마 그때부터는 개구리를 먹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골짜기에서의 메기잡이는 성공적이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메기를 손질하느라 형들과 두어 시간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손질 한 메기는 매운탕을 끓여 먹고 나머지는 양파자루에 넣어 따뜻한 햇살에 말렸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형들은 내가 메기 잡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음날 다시 가자고 했고, 다시 찾은 그 바위에는 메기가 열 마리도 채 나오지 않았다.
역시 자연은 우리에게 필요한 이상의 뭔가를 허락할 때에는 반복적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연에서 뭔가를 얻었을 때에는 그것이 한 번 이상 되풀이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봉령도, 돌배도, 송이버섯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자연은 나에게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가르쳐 왔던 것은 아닐까?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내가 자연으로부터 얻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어쩌면 정말 어렵고 힘든 삶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연이 주는 많은 것들과, 친구들과 이웃들, 그리고 내 삶이 삐뚤어지지 않은 온전한 삶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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