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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재환 Dec 19. 2021

길들임의 책임

나와 장미의 이야기

내 손이 가까이 가면 네 손이 다가온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져

작은 표정에도 네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고

짧은 문자 텍스트 속에서도 따뜻함을 불러낸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순간에

나는 지난 무수한 실패 스토리를 떠올린다




여우와 장미의 이야기처럼

나는 누군가를 길들여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에게 길들여졌었다


우린 영원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족쇄처럼 우리를 묶고 있다가 결국은 우리에게 몹쓸 흉터만 남기고 억지로 끊어져 내렸다


그때의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그는 나의 온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차가워졌을 때, 내 곁에서 오돌오돌 떠는 그를 보며

내가 더 이상 그에게 온기를 줄 수 없음을 알고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나면 그는 다시 따뜻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결국 그는 추위에 혼자 남게 될 뿐이었다




혹시 그는 함께 추위를 견뎌줄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았을까

그 뒤로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상대가 너라면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 뒤로 흐른 시간이 얼마나 충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허락받기도 전에 방문해 들어간 네 마음속에서

따뜻한 차와 편안한 앉을자리를 받으며

얼마나 네가 좋은 사람인지를 생각한다

괜찮다면 오래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약 내가 다시 차가움을 꺼내 든다면

너는 아마 속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겠지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를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렇기에 더욱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것


그러한 길들임과 책임감

의 무게.


사람은 아픔을 먹고 조금씩 자라난다

두 번 다시 같은 아픔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난날 아픔이 아무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는 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울 꿈을 꾸게 해 준 당신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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