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시
매일 아루하의 생각으로 채웠던 글을 어떤 것으로 채울까 고민했다. 물론 그날 특별한 경험과 새로운 교훈을 적으면 좋겠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요즘 목표는 하루의 하나 이상의 글을 쓰자는 게 나름의 목표라 그걸 쓰기로 했다.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쓰되 글의 뜻은 읽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그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쓸 뿐이다.
슬픔이라는 글은 인스타에 올라온 하나의 사진에서 나왔다. 검은 바탕에 하얀색 글자로 적힌 [슬픔]이라는 두 글자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속에 뜻과 배경은 내 관심 밖에 이었다. 그저 작가가 하고 싶었던 슬픔은 무엇일까? 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슬픔은 또 무엇일까?
한동안 힘들었다. 활동 중인 꼬꼬무 북토크에서 [어른이도 온기가 필요해] 저자와의 만남을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놀이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첫 질문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슬픔이었다. 상처 자국조차 지워진 낡고 낡아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오래된 시소와 철봉만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놀이터였다. 거기에 나는 자취도 없이 존재한다.
내가 나의 타인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나는 여전히 나의 타인이다. 저자의 언어로 물은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다. 여전하니까. 변함없이 가둔 봉인된 기억!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이다. 나의 슬픔은 나의 어린 놀이터다. 2주간의 시간 동안 나는 글도 쓰지 않고, 북토크에 참여도 하지 않았다. 수동적인 자세로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불쌍하게도 여전히 나의 어린 시절이 아프다. 슬프다.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