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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Dec 08. 2024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

소운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


이 말이 예뻤다. 작은 책이라는 생각과 따뜻한 글이라서 추천하는 저자의 말에 성큼 지갑을 열었다. 대전 북페어에 참여하면서 첫 번째로 구매한 책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만, 작가가 탄생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에세이 장르 중에 수필에 가깝다. 일기 같은 형식이라 몰래 엿보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목차부터 시작해 각 페이지를 장식하는 자필 글씨가 인상 깊다. 절대 엄청 잘 쓴 글씨는 아니다. 비뚤 빼 둘하고.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한다. 사실 목차로 구성된 페이지에서 목차라는 것도 리뷰를 위해 펼쳐본 후에 알았다. 몇 장을 장식하고 있는 자필 글씨가 바로 목차였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말들을 나열해서 목차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예쁜 말과 단어의 조합이다.


마음이 자꾸 모여 꽃밭이 됐어

꽃잎이 내렸다가 별빛이 내렸다가

깊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모든 기분을 품고 살지 않아도 돼

왜 내 슬픔을 설득해야 해


목차 중 한 부분이다. 시적인 표현이 예쁘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엔 작가가 좋아하는 글귀를 모아두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글의 제목이었다. 가, 나, 다 똑같은 단어를 쓰는 사람이 만든 문장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시를 써도 참 예쁘게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내용은 아주 짧다. 보통 책처럼 양 페이지를 가득 채우지도 않았고, 아주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다. 그녀가 위의 제목으로 쓴 글이 글 안에 녹아져 있을 뿐이다. 참 제목을 잘 지었구나 싶을 정도로 짧은 글에 대한 소감처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제목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끄덕이게 된다.


책을 읽다가 웃어본 적이 별로 없다. 보통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정도 나는 T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웃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무심코 웃고 있는 날 보았다. 음지에 있던 저자가 세상 밖으로 나와할 일 없는 삶에서 글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이어진 글에서 그녀의 미소를 따라 나도 웃은 거였다. 30년 평생 양말을 사 본 적이 없다는 이가 어느 날 선물을 주기 위해 양말을 샀다. 그녀의 처음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 하는 따뜻한 감사 인사에 나도 그 선물을 받은 듯 행복하다. 


어쩌면 에세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일기라고 표현하는 맞을 것 같다. 그날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을 담은 글이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난 친구,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인, 태어나 처음 산 양말, 그리고 선물, 100일 동안 100 글자씩 쓰기 시작한 글에서 더 길어진 글까지 내가 처음 글을 시작했을 때 어땠었나? 책을 덮고 생각해 보았다. 시를 한 편 한 편 엮을 때마다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본 한 장면을 가지고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을 때 뿌듯함, 첫 댓글에 고마움!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행복하게 했다. 


책마다 갖는 느낌은 다르다. 이 책은 내게 처음을 기억나게 해 주었다. 누군가에 진실한 표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이 책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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