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글/홍찬주 그림/내일을 여는 책
어린이 권장도서이다. 이 책은 어떤 분의 선물이다. 마수걸이를 했다고 선물로 줄 테니 하나를 골라보라고 해서 둘러보는 중 내 손에 들린 책이다. 내 아이들은 이미 다 커버린 후라 이 책은 내 차지가 되었다. 어린이 책이긴 했지만, 어른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혐오 : 어떤 것을 싫어하거나 회피하는 감정
분명 여러 감정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혐오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이유는 혐오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학교 문제에서 놀림=장난=학교폭력 이런 말을 써도 혐오는 결합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저 표현이 딱 맞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곁에 두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피한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른 척한다. 잘못인 줄 알면서 동조한다. 이 모든 것들의 밑바닥에 깔린 것은 바로 혐오라는 감정이다.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고 읽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하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재우의 재미 삼아 붙여주는 뚱땡이라는 별명에서 시작하는 유미의 학교생활에서부터다. 한 아이의 숨죽여서 몰래하는 놀림만으로도 충분히 유미에게는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 터진 바이러스! 뉴스에서는 연일 중국에서 시작한 바이러스라는 말을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 중국인이 꽤 있음에도 거기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어른들은 중국인에 대한 적대심이 늘어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하필 유미가 중국인의 자녀다. 19살에 한국에 들어와 살게 된 아버지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학부모가 된 나이임에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산다. 한 동네에 10년째 한 가게만 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야박하게 매몰차게 그들을 배척한다. 그렇지만 유미의 부모님은 독거노인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익명으로 기부한다. 이들도 만약 자신에게 주는 도시락이 중국인이 준 걸 안다면 도시락을 먹었을까? (이건 글에 없다. 그냥 어른인 나의 의문이다.) 그들이 주는 감사함의 표시에 부모님은 희망을 다시 찾는다.
반면 유미는 마음의 병만 늘어가고 있다. 그러다 제일 친한 친구 민아가 재우의 편에 서서 함께 놀리기 시작했다. 유미는 절망하고 만다. 더욱 그들에게 대응하고자 하는 감정을 위축되고, 치쳐가는 중 놀림의 대상은 유미에서 민아에게로 넘어간다. 유미는 이 상황이 고소하지만, 동시에 민아가 걱정이 된다. 민아가 처음 유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처럼 유미 역시 민아에 손을 내밀고, 둘은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그들이 문제해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등학생이라는 신분과 선생님의 지지 때문이었다. 만약 선생님의 지지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도 해보았다. 끝까지 재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대응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맟서야 하는 것은 맞다. 놀린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무섭고, 창피하더라도 반항하고 덤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꼭 이런다고 해결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알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도움 요청을 하는 아이들을 봤다면 들은 어른은 그들을 지지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이게 맞물린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의 책 [내 옆에 앉은 아이]에서 다뤘던 학교 폭력과 사회문제와 교집합 적인 면이 있어서 유심 있게 읽었다. 학교 폭력이 꾸준하게 책으로 나오는 데는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잘못한 현실 앞에서 어른으로서 가슴 아프고, 슬프기도 하다. 비록 책에서는 잘 해결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