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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Jul 12. 2024

06화 딱 1년만 더

몰래 치료를 하시던 엄마는 결국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때 비로소 나에게 말했다. 아니 들켰다. 식사를 하던 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어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의 마지막 6개월은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매일 한 명씩은 유명을 달리하는 병동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통증을 느꼈다.


당사자인 엄마는 태연하기만 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저녁,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아 병원을 뒤졌다. 담당 간호사가 엄마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울음이 멈추지 않아 엄마 앞에 나서지도 못했다. 엄마는 호스피스 병동 내 교회에 있었다.


“하느님, 평소 믿지는 않지만, 절실하게 믿어 볼게요. 그러니 제발 제 딸과 딱 1년만 더 살다 데리고 가시면 안 되나요? 제 딸 평생 일만 하고, 제대로 쉬어 본 적 없는 아이예요. 일한다는 핑계로 여행 한번 가지 못한 착한 아이예요. 여행 한번, 외식 한번, 사진 한번 그 흔한 거 할 수 있게 시간 좀 주세요. 1년 아니어도 되니까. 남들 다하는 거 해보게 몇 달이라도 좋아요. 딸에게 짐이 되지 않는 지금 모습 이대로 몇 달만 시간을 주세요. 우리 딸 한 되지 않게 어미로서 다 해주고 갈 수 있게 제발 이렇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제발.”


교회에서 부처님한테 기도하듯 절을 하는 엄마를 보면서 웃지도 못했다. 간절함을 담아 절을 하는 엄마는 진지했다. 지켜보는 목사님도 말리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그때 뼈만 앙상하게 남아 혼자 들어도 번쩍 들리는 엄마를 안고 밤새도록 울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그리고 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엄마의 마지막 한 마디는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유언을 남기고 엄마는 하늘나라로 갔다. 나를 찾아온 유일한 사람은 생전 엄마가 선임한 변호사였다. 재산 상속 등 기타 도와주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가 떠드는 소리는 내 귀에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종이 한 장만 쥐여주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 종이를 본 나는 또 엄마를 보내야 했다. 사망신고를 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모든 절차가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절차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엄마의 사망신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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