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 것 같다면, 하자.
(2018.3.)
9년 2개월.
이만하면 됐다 싶었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올림하면 십 년이잖아.
대략 인생의 삼분지 일의 시간을 초등교사로 살았으면 이제 다른 것도 해보고 살자 싶었지.
나 혼자 보는 일기에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해외살이에 대한 소망이 적혀 있고,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검색해봤던 횟수도 수십 차례, 나도 모르게 가입되어 있는 뉴질랜드 이민에 관한 카페 등등. 한국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었어.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아서'야.
직장인들은 사표를 언제나 안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말이 있지? 나는 마음속에 언제나 사표를 넣고 다녔던 것 같아. 물론 그 마음이 언제나 수면 위에 있었던 건 아니야. 그래도 나름 10년을 했는데 아이들 때문에 웃고 보람 있던 적이 왜 없겠어? 한 때 유행하던 뇌구조 그림 있잖아. 거기에서 사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점에서부터 최대 크기까지 항상 변화했던 거지. 하지만 사라졌던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나도 사표를 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공무원의 퇴직에는 용어가 따로 존재하더라고.
依願免職(의원면직). 즉, 본인이 퇴직 의사를 밝히고 임용권자가 면직 행위를 해줘야 하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여성 직업이라고 말하는 초등교사. 아마 IMF 때부터 인기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어. 물론 그때는 내가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미 교대가 꽤 높은 수준에 있었어. 안정적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지. 우리나라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해야 초등교사를 할 수 있잖아. 그래서 임용도 중등보다는 경쟁률이 낮고. 그러다 보니 집안의 사정과 내 재능을 생각해서 초등교사로 진로를 정하게 됐어. 내가 딱히 내세울 재주는 없었지만 엄청 못하는 것도 없었거든. 어쨌든 정말 감사하게도 대학입시와 임용에 재수(再修)없이 합격을 해서 초등교사에 임용이 되었어. 그치만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정과 학교에서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지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많았어. 못해본 것이 너무 많아서 더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퇴직 의사를 학교에 알리고 나니 당연히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 조금 규모가 큰 학교였는데 소식을 들으시고는 모두들 눈이 동그랗게 되어서 찾아오셨어. 가장 많이 들은 말 두 가지는 '왜?' 그리고 '멋있다' 였어. 사실 두 가지 말 모두 쉽게 반응하기가 어려웠어. 생각해봐.
왜? 라는 질문에 내가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고, 대충 말하기에는 또 좀 건방져 보이잖아.
멋있다, 라는 말에는 두 가지 마음이 같이 들었어. 칭찬을 들어서 기분 좋음과 동시에 '아, 나 이러고 망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떠올랐어. 나라고 왜 걱정이 없었겠어. 내가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지고 말 그대로 백수가 되는 건데. 무엇보다 내 딴에는 엄청난 모험이 시작된 거니까.
그렇게 학교에 퇴직을 표한 후, 정한 기한까지 근무를 하는데 나도 문득문득 '이게 맞는 길인가?' 헷갈렸어.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한 평생 한 직장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틈에서 생활하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더라고.
그러는 와중에 어떤 분을 만나게 됐어. 이분은 작년에 컴패션에서 비전트립을 갔을 때 만나게 된 분이었어. 사실 그런 모임이 아니었다면 만날 접점이 없는 분이었지. 지금 호주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계신데, 금융업 쪽에 종사하신다고 들었어. 이번에 한국을 잠깐 방문하시면서 만나자고 하시길래 인생 이야기도 들을 겸 만나게 되었어.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 마음에 남았던 한 마디가 있었어.
"지금까지 살아야 하는 대로 살았다면 이제,
살고 싶은대로 살아보세요."
주변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이 분은 나의 결정에 대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잘했다고 하셨어. 그 분의 인생이야기를 듣노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더라고.
어쨌든 그렇게, 사표를 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