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시계가 8시를 지나는데 고양이 녀석이 팔베개를 하고는 도대체 일어날 생각이 없다. 아침 수영을 다녀와야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어 일요일에는 주로 아침 9시에 수영 연습을 하러 간다.
겨울에는 거실이 추운지 녀석은 새벽마다 방으로 들어와 품을 파고든다. 뜨뜻한 바닥이 좋은지 녀석은 해가 훤히 떴는데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그냥 이대로 녀석이랑 뒹굴뒹굴할까? 지금 안 가면 나중에 가기 싫을 텐데...... 이런저런 갈등을 하며 20 여분이 훌쩍 흘렀다. 떡 실신하다시피 누워 있는 녀석을 밀어내고 내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날 자신이 없다.
그러다 일부러 녀석을 꼭 안았더니 녀석은 후다닥 일어나 자리를 빠져나간다. 나도 얼른 일어나 밥을 챙겨주고 가방을 꾸려 수영장을 향했다.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그렇지 막상 나오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집 밖을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9시를 넘어서자 수영장에는 사람들이 제법 들어서기 시작했다. 다들 열성이다. 평소에 잘 되지 않는 영법 드릴을 연습했다. 초보일 때는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배우고 다듬어야 할 게 많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쭉쭉 잘 나갈 때는 기분 좋았다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왜 이렇게 물이 무겁고 힘든 거야? 하며 고개를 처박고 물속에 욕을 한 바가지 끌어 붓는다.
아침 공복이라 기력도 떨어지고 다 낫지 않은 어깨 때문에 30분을 남겨두고 수영을 마쳤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인지 샤워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예닐곱 살 즈음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 아이만 혼자 샤워기를 틀어 놓고 있었다. 아침 일찍 엄마를 따라왔나 보다 생각하며 그 부지런함이 가상했다.
머리를 감고 한참 동안 샤워를 하고 있어도 아이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랑 왔나? 그래서 혼자 샤워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샤워 도구가 아무것도 없었다.
"너 혼자 수영하러 왔어?"
"아니요"
"엄마랑 왔어?"
"네"
"엄마는 어딨어?"
"수영장에요"
"엄마는 아직 수영 중이야?"
"네"
아이를 보내 놓고도 아직 연습 중인 그 엄마도 나처럼 수영을 엄청 좋아하나 보나 싶었다. 텅 빈 샤워장에서 혼자 물을 맞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는 이제 9살이 되었으며 8살부터 수영을 배웠다고 한다. 1년을 배웠으니 골고루 모든 영법을 다 익혔으려니 했는데 개구리헤엄만 겨우 한다는 말이 의외였다. 주변의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빨리 수영을 익혀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여자 아이는 수영을 싫어한다는 말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추운 겨울 아침, 이부자리의 따뜻한 유혹을 떨치고 수영장을 오는 것은 당연히 수영을 좋아해서 일거라고 믿었는데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상당히 의외였다.
"수영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수영하러 왔어?'
"엄마가 가자고 해서요"
"수영하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한테 안 가겠다고 하면 안 돼?"
"그래도 엄마는 가자고 해요"
"수영을 좋아하지 않으면 네가 좋아하는 건 뭐야?"
"태권도 좋아해요"
"태권도는 왜 좋아해?"
"품새가 재밌어요"
품새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이는 태권도를 좋아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한없이 여리고 작아서 7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태권도를 재미있어하는 것도 의외였다.
"수영은 재미가 없어?"
"네"
"왜 재미가 없어? 앞으로 잘 나가지지 않아서 그래?"
"아니요, 물에 있으면 추워서 싫어요"
"그럼 여름에 수영하는 건 좋아? 여름에는 물에 있으면 시원하잖아"
"여름에도 물에 있으면 추워서 싫어요"
"그럼 물놀이장에서 노는 것도 싫어하겠네?'
"아니요. 그건 괜찮아요"
"왜?"
"그건 밖에서 하니까 햇빛이 있어서 안 추운데, 수영은 안에서 하니까 추워요"
"엄마한테 그렇다고 얘기해봤어? 그래서 수영장에 가기 싫어요 하고 얘기하면 안 돼?"
"그래도 그냥 물속에 있으면 된다고 해요"
"..........."
수영 자체가 싫은 건지, 물이 차가워서 싫은 건지 그 짧은 이야기로 다 알 수는 없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혼자서 우두커니 샤워기 물을 맞으며 수영장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엄마인가 싶어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지루한 기다림이 물에 씻겨 내리고 있었다.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쩌면 수영도 태권도만큼 좋아질지도 몰라."
생존 수영 차원에서 아이가 수영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 말을 건네고 샤워장을 나왔다. 옷을 입고 탈의실을 빠져나오는데도 종료 시간은 15분이나 남아 있었다. 아직도 엄마는 수영을 하고 있는지, 아이 혼자 여전히 물을 맞고 있는지 마음에 걸렸다.
한 팔로 들어 올려도 될 것 같은 작은 아이의 생각에도 나름의 선택과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 선택이 어른에게도 똑같은 무게와 의미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길게 따라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