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꺼내는 건 오직 나... 뿐?
새로운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은 하나.
'이 행동... 현지인들은 하고 있나? 나만 하나?'
'왜 저렇게 하지? 나도 해야 하나? 나만 안 하나?'
현지인의 행동을 빠르게 파악하고 따라 하거나, 또는 '따라서하지 않으면' 된다.
10여 년 전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에는 기숙사나 친구 가족 집에 초대받을 때에도 신발을 신고 들어갔었다. 신발을 벗었다가 나만 맨발이어서 냉큼 다시 신발을 신어야 했던 기억. 그런데 몇 년 전 다시 찾은 미국. 아기를 키우는 집에 갔더니 신발을 다 벗고 들어오라는 것이 아닌가? 문화도 시간이 흐르며 변하기 때문에 최대한 튀고 싶지 않으면 주변의 현지인이 하는 행동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최선이다.
세모네모가 처음으로 등교한 날, 남편과 나는 동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둘러보니 우리만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다들 익숙해서 그런 건가? 싶었다. 그런데 놀이터에 가도, 레크리에이션 센터에 가도 우리만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첫째, 초상권을 더욱 중요시한다는 것. 타인의 아이까지 함께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보니 평범한 일상까지 사진을 굳이 찍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SNS에 올리려고 살아요.
김주환 교수님께서 유퀴즈 프로그램에 나와 <인정중독에서 벗어나는 법>을 주제로 말씀하셨다. 그중에 SNS에 과시하기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얼마나 행복과 멀어지는 일인지 우리가 그것을 인지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캐나다에 온 이후로, 내 사진첩에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찍어놓은 사진 개수가 훨씬 줄었다. 한국에서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대학 시절부터 꿈꿔온 일상을 살고 있는데도 나는 사진으로 담지 않았다. 아니, 찍지 못한 게 더 맞겠다. 아이가 아트 수업에 가서 열심히 색칠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았다. '나만 휴대폰을 꺼내니까...' 친구네 집에 초대받았는데 차려진 음식이 너무 멋있어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자신이 차린 음식이 음식이 멋있어서 찍어서 기록할 만도 한데 사진을 찍지 않는 친구...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조용히 식전 기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지 못하니 내 삶을 노출해 온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을 거의 올리지 않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잘 지내냐며 묻는 소수의 친한 친구들에게만 가끔 몇 개씩 그제야 후다닥 찍어서 보내주었을 뿐이다.
사진을 안 찍게 되니, 답답했을까?
사진을 못(?) 찍게 되니 카메라의 작은 네모 안에 보이지 않았던 내 아이의 즐거움이 보였다. 보여주고 싶었던 아이의 집중하는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닌, 아이가 작은 손으로 열심히 색칠하던 보라색이 눈에 들어왔고, 아이의 옅은 미소와 집중하는 입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가 만든 음식이, 디저트가 너무 예뻐도 사진을 찍지 않으니 그녀의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음식의 생김새가 아닌, 그 음식을 만든 재료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녀가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며 보낸 하루의 수고가 느껴졌다.
여름날,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한창 파도에 발을 담그고 놀던 순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냥 집어넣었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쫓아오는 파도가 우릴 덮칠까 깔깔 대며 도망치는 그 순간 나는 정말 행복했다.
예전엔 여행을 가도 불편해도 예쁜 옷, 풀 메이크업을 하고 나갔었다. 사진 찍을지도 모르니까. 캐나다에 오고 나니 여행을 가도 편안한 옷에 메이크업보다 선크림을 더 챙기는 일상을 보낸다. 사진 찍을 일이 없기도 하지만, 그저 순간을 즐기면 그걸로 너무 충분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주환 교수님은 타인에게 내 행복의 기준을 판단할 권리를 주지 말라고 얘기하신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인정 중독에서 벗어난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그렇게 살기 너무 어렵지 않냐고 묻는 제작진에게 말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사는 게 더 어려운 거예요."
나는 요즘 시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에게 1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나는 60분만큼의 공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1분 전의 시간이나, 61분 이후의 순간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공간의 룰이다. 아이와 놀아주기로 결심한 순간에는 폰을 보지 않고 블록을 아주 열심히 쌓는다. 아이와 책을 읽기로 한 순간에는 '몇 시에 자려나', '아이 자고 나면 뭐 해야 하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책 읽는 시간이라는 공간은 오롯이 그 순간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SNS에 올리려고 살지 않는 요즘,
행복은 사진 안에 있지 않았다.
그 순간에 눈으로 귀로 피부로
느끼는 것이 행복이었다.
행복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