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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Sep 14. 2020

우리 반 아이의 심각한 교권침해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만.

어느날 저녁, 카톡이 와 있더군요.



아, 코로나 때문에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별일도 없었는데... 그사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모욕해... 하...

녀석의 고백에 나름 긴장을 했는지 물음표 뒤에 쓸데없는 녀석이 하나 붙어 있네요. 네, 고백합니다. 긴장했어요 했어.  당연하지요. 학생이 모욕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저렇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무니까요.




1분여의 정적이 흐른 후 녀석이 고백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친구랑 장난을 치면서 친구한테 "니 얼굴 우리 담임 얼굴이다"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또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잘못한 게 찔려서 고백하노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참 착한 중1 남아로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궁금합니다.

"니 얼굴 우리 담임 얼굴이다"가 왜 저를 모욕한 것인지 저언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무지에게 말했지요.



너 친구에게 큰 칭찬을 했구나. 아름다운 우정이다! 





그런데 녀석이 또 사과를 하네요.


아,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친구를 칭찬했구나라고 말했으면, 아 우리 선생님은 아름다운 분이시구나 깨달아야지

아니 왜 또 사과를 하느냐고.


이건 무지군이 제 얼굴에 대해 명백하고 확고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뜻이죠?

친구한테 제 얼굴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욕이라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담임쌤께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었구나 생각을 한 거죠?

그러니까 이 학생님은 미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며,

제 얼굴을 재평가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담임 얼굴은 진짜 별로며ㅠㅜ 꺼이꺼이ㅜ

그 와중에 쓸데없이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

저한테 느닷없이 고백을 하며 저를 두 번 죽인ㅜ


하, '친구를 칭찬했구나'라고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아니 왜 쓸데없이 두 번 세 번 사과를 하는 거야.

암만 생각해도 이건 교권침... 아니 제 미모폄훼.

이 모욕감, 너를 용서치 않으리...




하, 그런데 저는 또 참으로 너그러운 녀성이라 (그러나 또 자신감은 제로라 뭐 더는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마무리를 짓...



('냅' 뒤에 붙은 쩜쩜이 저를 더 초라하게 만드네요. '애쓰시네요 선생님' 이런 느낌.

흐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니?????

제가 지금 정신승리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정중하게 말하니 더 서럽고요ㅜ)




마무리를 짓기는 뭘 지어요. 급 정색!!!!



쿨한 척했지만

아마도, 너는 나를 모욕한 게 맞다. 진실은 너님이  아니까.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가나 했는데 저녁에 보니 톡이 또 와 있네요?



와, 왜 걱정하는 듯 말하는데? 안 읽어, 안 읽어, 네 톡 안 읽을 거야.

(미리 보기로 이미 읽었... 의문의 연패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아,

비도 오고, 얼굴은 우습고, 녀석은 쓸데없이 연이어 사과하고.

우산 없이 걸으면 비님이 내 눈물을 닦아주려나요.





덧붙임.

절대로 복수 아님. 교육자료일 뿐입니다.

 

무지야, 너의 찐 우정을 응원한다.

https://youtu.be/EBdsGBBR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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