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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Nov 08. 2024

김여사, 정여사, 박사장

소셜말고 소설



나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어떤  SNS 도 하지 않는다.온갖 네이버 카페 및 단톡방도 다 탈퇴했다. 오직 브런치북이 유일한 나의 '소셜미디어'이다. 바람만 불어도 와장창! 할 것 같은 박빙(薄氷)의 유리멘탈에 종이장처럼 얇아빠진 귀를 가진 내가 '비교지옥'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기에, 아예 스스로 지옥문 앞에 설 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해야하나. '소셜'할 시간에 내 멋대로 내 맘대로 아무도 안보는 '소설'이나 써볼까.  그래서 붙여본 제목. <소셜 말고 소설>


* 이 글은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때, 올렸던 글입니다.브런치북으로 옮겨오기가 안되서 다시 올림을 밝힙니다. 누구에게나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소설같지 않은 이야기. 혹시 지나는 길에 시간이 나시면 이들의 대화를 잠시 엿들어 보시겠어요^^





1. 김여사     

시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늘 지나가는 부동산 앞에서 김여사가 서성입니다. ‘전월세,매매, 상담환영, 등의 문구가 어지러이 붙어있는 창문 앞에 붙어서서 곰곰이 매물 가격 안내판을 읽고 섰던 김여사는, 큰 결심을 한 듯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며, 실로 오랜만에 들리는 녹슨 풍경 소리에 졸고 있던 사장님이 눈을 반짝입니다.     

“앉으세요. 앉아요... 사모님, 뭐를 도와드릴까?”     

중년 이상의 남자가 여자에게 앉으라고 권하며 손수 의자를 빼주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로만 알았지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김여사는, 잠시 선 채로 간단히 물어만보고 가볼까.. 하는 처음의 마음도 잊은 채, 파뿌리가 비쭉 튀어나와있는 시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얼결에 사장님이 ’손수 빼 준‘ 의자에 앉았습니다.     


“뭐... 커피라도 한잔 드려?”     


오랜 지인인 양,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장님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운 김여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듯 작아집니다.     


“아니..저...그게 아니라... 요 앞에 ** 아파트 있잖아요. 제가 거기 사는데요....”

“아유.. ** 아파트 사모님이시구나. 어쩐지... 왠지 낯이 있다 했잖아. 내가..이 동네 사모님이네....”

“네, 여기 산지 좀 오래됐어요.아니..뭐.. 집을 내놓을까 싶긴 한데...”

“파실라구??”     


사장님이 김여사 앞에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밀어놓으며, 난짝 의자를 바짝 당겨앉았습니다.     


“아니.. 아직 결정한 건 아닌데요...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재건축이 언제 될지도 모르겠고...애들이 커가니... 평수도 그렇고...너무 낡기도 했고...뭐..그래서 한번 알아나보려...”

“사모님, 몇동 몇호세요?”     


김여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세월의 흔적으로 빛바랜 까만 수첩을 꺼내어 들며 사장님이 어서 불러보라는 듯 볼펜을 딸깍입니다.


“000동 0000호예요. 근데.. 사장님 지금 팔아도 괜찮을까요?”     


동호수를 듣고 난 사장님 눈에 결연한 의지가 보입니다. 몇달 전, 블로그와 부동산 카페를 운영하며 온라인 고객까지 대다수 확보한 빠릿한 젊은 사장이 바로 옆에 부동산을 오픈한 후, 안그래도 뜸하던 손님마저 끊기고, 하릴없이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가 퇴근을 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는 중 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의자를 바짝 땡겨앉는 것으로 모자랐는지, 상체를 아예 김여사가 앉은 맞은편쪽으로 쑥~빼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속삭이는 어조로 말합니다.  

   

“사모님..제가.. 워낙 고객들께 이런 말씀을 잘 안드리는데, 뜨내기 손님도 아니고 이 동네에 오~래 사신 사모님이라니까 말씀드릴게요.”

“네?.... 저한테요?? 뭐를요...”     


끝이 애매하게 짧던 사장님의 말투가 안 그래도 거슬리던 김여사는 은근하게 속삭이듯 갑자기 존칭을 쓰

는 사장님에게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제가... 이 동네 이 자리서 부동산만 20년쨉니다. 국토부 뉴스보다 내 말이 더 맞을걸요?

... 제가...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부서의 심의 담당자들도 좀 알고, 여기 조합장하고도 아주 막역한 사이거든요. 아마 이 동네 부동산에서 ** 아파트 조합 속사정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없을 겁니다.”     


김여사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참키며, 사장님의 달싹거리는 얇은 입술에서 나오는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여기?? ... 어후..... 힘들어요..”     


고개까지 설레설레 흔들며 사장님은 신이 난 듯 이어갔습니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요구한 몇가지 사항을 조합장 이하 몇몇 간부들이 받아들일 맘이 전혀 없어요. 절대로 손해는 안보겠다는 거지.. 뭐.. 말로야 이사들이랑 조합장이랑 감사 영감님들 몇몇이 모여 서울시에 피켓들고 항의하러 간다...그러던데... 허, 참 !! 웃기지 말라그래요. 그거 다 쇼하는 거예요. 그리고 간다한들, 공무원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그게 되겠습니까?     


김여사의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반상회 갔더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거라고 하든데요...”

“아, 거야 당연히 조합에선 그렇게 말하겠죠. 조합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럼 ’안될 거‘ 라고 하겠어요??”     


김여사는 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진행해 온 게 있는데...설마요...”

“이 사모님이 이렇게 순진하시네... 막말로... 재건축 완공되면 오히려 조합장은 어차피 따박따박 월급나오는 땡보직이나 잃는 거지. 사업이 진행되는 말든 솔직히 관심없는 거 내 눈에는 다 보이거든? 이런 내부 정보... 아무한테나 말 안해드려요. 이 동네 오래 사신 사모님인데다가..착해빠져만 가지고 순진~ 한게.. 꼭 우리 조카 동생 보는거 같아서 특별히 말씀드리는 거야...."     


재건축 하나 바라보고, 강보에 꽁꽁 싸서 하기스 차고 들어온 큰 아이가 낼 모래면 콧수염이 시커먼 중학생이 되는데 이게 뭐람... 뜻밖의 비보에 김여사는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그러지 말고... 이왕 맘먹은거 이번 기회에 한 번 정리하고 옮겨타는 것도 방법이예요. 이주 완료까지 했던 사업장도 엎어지는 마당에, 이대로 사업 멈춰서 지지부진하다가 경기 잘못타면 죽도 밥도 안되고 허송세월만 가는거지 뭐....저기 근처에 oo아파트... 조합설립되고도 아파트 입주까지 26년 걸린 거 알죠? 내 고객들 중에 재건축 기다리다가 그 집서 돌아가신 양반들도 부지기수야..쯧쯧... 결국 그 집 귀신된거지 쯧쯧쯧....”

     

끌끌... 혀까지 차며 안타까워하는 사장님을 보니 김여사의 마음이 콩닥콩닥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모님..절대로 어디가서 내가 이런 얘기 했다고 하면 안됩니다?? 나랑 조합장이랑 친한데..실은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아이고...사모님이 내 조카 동생 같아서 안해도 될 소리를 해버렸네...”

“아니예요..어디가서 누구한테 제가 그런 말을 하겠어요...아무튼...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 유난히 시장 가방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김여사는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내려놓는 것도 잊고 현관에 선 채로 십년이 훌쩍 넘게 살았던 집을 처음인 양 찬찬히 둘러봅니다.

환골탈퇴한 새 집에서 단지 안의 초등학교에 다닐 아이를 상상하며 당시로서는 무리해서 대출까지 내어 장만한 집이었습니다. 아이 둘 다 어린이 집 문닫는 시간까지 맡겨놓고 부부가 십년을 하루같이 종종거리며 열심히 산 덕에 대출금은 거의 갚을 수 있었지만, 대출금을 다 갚을 즈음에는 신축이 되있을 줄 알았던 집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점점 낡아만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좋았던 시간.... 힘들었던 시간... 아이들 웃음소리, 울음소리....어린 시절의 아이들 추억.... 집안 구석구석에 켜켜이 내려앉아, ’비록 낡고 비좁아도 내가 이 집에 정이 들대로 들었구나....‘ 김여사는 한숨을 쉬며 시장 봐 온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 칸칸이 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은 냉기처럼 떠돌다 차갑게 가라앉기를 반복합니다.


“이 집을 팔면... 마음은 허전하겠지만 통장은 여유로워 지겠네...”

“엄마!!! 배고~~파!!”     


우당탕퉁탕!! 학원에서 나란히 돌아온 두 아이의 소란함에 김여사는 잠시 생각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밥을 앉히고, 또각또각 칼질을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먹이고, 큰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작은 아이 책도 읽어주고...더 놀겠다고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나서야 계속되는 야근에 지칠대로 지쳐보이는 남편이 귀가를 했습니다. 저녁을 건너뛰어 출출하다는 남편에게 야식을 차려주고 김여사는 식탁 맞은 편에 앉아 오늘 부동산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으며 어떻게 할까..여보...의논을 해보지만, 피곤한 남편은 허겁지겁 국을 들이키며 듣는 둥 마는 둥...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식사를 마치자 마자 씻지도 않은채로 소파에 앉아 졸다가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외로운 김여사의 고민이 깊어갑니다....

그리곤 한편으론 궁금해집니다...


’근데...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상황이 이렇게 나쁜데... 우리집을 누가 사려고할까?? 안팔리면 어떡하지?? 소문나기 전에 어서 팔아야하는 건가....?‘     


평소 같으면 소파에 앉은채로 잠이 든 남편의 등짝을 때려가며 씻으라고 화장실로 들여보냈건만....심란한 김여사는 벌써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남편의 소리도 안들리는 듯, 그릇도 치우지 앉은 식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까맣게 타들어 가는 김여사의 마음처럼 속절없이 밤은 더 어두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2. 정여사     

얼마 전 오래 살던 집을 판 정여사는 벌써 몇칠 째 이 동네를 돌아보는 중입니다. 학군이 좋고, 주변에 유해환경이 전혀 없어 아이들 키우기 최선인데다가, 교통도 편리하고,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자연 경관까지 갖춘 이 동네는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정여사는 처음엔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예쁘고 처녀같은 아기 엄마에게 괜스리 기가 죽기도 하고, 분명 양손 가득 시장바구니를 든 것으로 보아 장보고 집에 가는 차림새가 분명한데도, 수수함 속에 뭔지 모를 세련된 아우라가 느껴지는, 멋쟁이 모자를 쓴 나이 지긋한 부인을 감탄의 눈길로 힐긋힐긋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벌써 몇칠째 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있으면서도 선뜻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낯설기만 하던 동네가 조금씩 눈에 익고, 빵집, 슈퍼, 세탁소, 유치원, 동물병원, 철물점.... 어디나 사람사는 동네는 비슷하구나 실습니다. 그러나 역시 집을 판 돈만으로는 이 동네의 집을 사기 부족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 뻔했기에, 정여사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대출을 받거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아까운 적금을 모두 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한 후, 정여사는 오늘은 큰 맘 먹고 부동산에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일단 가격을 알아나보자!!‘      


“어서오세요!!!”     


문이 열리며, 실로 오랜만에 들리는 녹슨 풍경 소리에 졸고 있던 사장님이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앉으세요. 앉아요... 사모님, 뭐를 도와드릴까?”


손님도 없는 빈 사무실에 하릴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전기세마저 아까워 꺼두었던 박사장은 주섬주섬...어디엔가 던져두었던 리모컨을 급히 찾기 시작합니다. 허둥지둥하는 사장님을 가만히 보고 섰던 정여사는 오히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 했습니다. 간신히 리모컨을 찾은 사장님은 급히 에어컨을 틀고 시원한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으시라는 손짓을 합니다. 부산스러운 사장님의 행동에 오히려 용기가 좀 생긴 정여사는 의자에 앉았지만, 시선 둘 곳을 못찾고, 괜히 벽에 걸린 서울 지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전에 살던 동네와 지금 이 곳이 어느 정도 거리인지 이렇게 보니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뭐... 커피라도 한잔 드려?”

“아니.. 괜찮아요.....”

“그럼.... 시원한 물이라도 따라 드려봐?”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단골 손님을 대하듯, 존대인 듯, 반말인 듯, 애매하게 끝이 짧은 어투로 오버하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장님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진 정여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듯 작아집니다.     


“아니..물은 됐구요.....저...그게 아니라... 요 앞에 ** 아파트 있잖아요”

“아~ 네네... 거기 사시는 사모님이신가??”     


정여사는 왠지 ’사모님~‘ 소리가 낯간지럽고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있어보이는  척‘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몸에 배지 않아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 짝이 없어서, 정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이내 바짝 쳐들었던 고개를 다소곳이 내리고 말았습니다.     


“아니...여기 살진 않구요.. 이 동네 집을 하나 알아보고 싶은데...."

"아,네네.. 어떻게.. 전월세 구하시나? 좀 있으면 본격적인 이사철이니 미리 움직이는게 좋기는 하지. 그나마 좀 골라볼 수도 있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사는 거요. 그니까.. 들어가 사는거 말고... 사는..."

"아아아....!!! 그니까 매수하려는 사모님이시구나."


사장님의 눈에 순간적으로 반짝 빛이 어리고, 애매하게 잘라먹던 말 끝이 가지런하고 단정하게 모아지며 '사모님'  소리에 힘이 실렸습니다. 한 달 전, 옆가게 새로 오픈한 부동산의 새파랗게 젊은 사장은 온라인 카페니, 블로그니 이런 걸 만들어 놓고 허울만 좋은 각종 데이터나 실거래가 분석 등의 글을 올려 온라인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그 고객들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박사장의 가게는 안그래도 뜸하던 손님마저 뚝 끊기고 하릴없이 전기세만 나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내공과 경험도 없이 그럴싸하게 겉만 번지르르한 데이터로 고객들을 현혹하며 혼자 다 해먹는 젊은 녀석이 눈꼴사납게 아니꼽던

참이었습니다.

’저런 자료가 다 무슨 쓸데가 있다고.....부동산은 뭐니뭐니 해도 이 바닥 오랜 실전 경험이 최고지‘

컴퓨터를 배워볼 의지 따위는 애초에 없던 박사장은 이렇게 궁시렁대며 괜스레 젊은 사장을 깔보곤 했습니다. 그랬기에. 실로 오랜만에 가게에서 손님을 만난 박사장은 이번엔 절대 고객을 놓치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합니다.   

   

“키야~사모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셨네요.. 뭐 알고 오셨나??? 우리 사모님 진짜 고수시네~”

“네? 아녜요.. 고수는 무슨요. 저 잘 몰라요..사장님...”     

“여기 엄청 오래된 아파트고, 지금 재건축 진행 중인 건 아시죠?”     


난데없는 고수 소리에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레를 치다가 민망해진 정여사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여태 지지부진 하다가 이번에 서울시에 서류 하나 들어갔는데, 그거? 이번에 무조건 통과예요. 제가 서울시 재건축, 재개발부서 심의 담당들도 좀 알고, 여기 조합장하고는 형님,동생하는 사이거든요. 이 자리서만 20년째 부동산을 하다보니...”     

“그럼...만약에 통과 안되면 어떻게 되나요?”     

“에헤이...이 사모님, 속고만 사셨나... 안돼긴 왜 안돼요. 이번엔 무조건 된다니까요.여기 조합사정 나만큼 아는 부동산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요. 다른 부동산에서는 오히려 주인들이 집값 올리고 물건 거둘까봐 다들 쉬쉬하는데....이거 이번에 통과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예요. 다음 달이면 이 가격 못 보실 겁니다. 이 물건 나가고 나면 앞으로 이 가격대엔 절대 안 나올겁니다,암요.”     


박여사의 눈빛이 흔들립니다.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러나 급한 마음을 들킬새라 최대한 차분하고 의연하게 물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듣기로는 뭐 좀 잘 안돼서 오래 걸릴거라고 하던데요..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 해결이 된 건가요?     

”에...참...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해결 안 될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여기 조합장...사업 성공 의지가 확고하고 부동산 재개발, 재건축으로 돈도 많이 번, 상당히 감좋은 양반이예요, 사모님 저 만나신거 지인짜~ 운이 좋으신 겁니다. 지금 나왔던 물건 싹 다 들어갔는데, 마침 그댁 사모님 사정이 급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파시는 집이 저한테만 딱 하나 있거든요. 딴데는 가봐야 지금 물건 없어요."

”그럼...사장님만 가지고 계신 집인가요?“

"그렇죠, 저한테만 전담으로 의뢰를 하신 거라...제가 이 동네서 20년째다 보니... 그 사모님도 여기 오래 사신 원주민이라 아무래도 신뢰할 수 있는 곳에 믿고 맡겨주시는 거죠“      


그러나 막상 가격을 듣자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정여사는 용기가 꺾이는 듯 하고 심장이 두근두근 널을 뜁니다. 머릿속으론 부지런히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럼... 얼마를 더 보태야 그 집을 살 수 있지? 요즘 대출 이자가 얼마더라 ..엄청 올랐던데...근데...대출이 나오긴 나오는건가????“ 아까운 적금을 그냥 포기해야하나...?”


갈팡질팡 고민하는 정여사의 복잡한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 사장님이 의자에서 돌아앉으며 수첩을 뒤적입니다.     


”지금 매수 대기하시는 분들이 두분 더 있는데, 마침 문자 한번 돌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특히 이쪽 동네선 물건 잘 안 나오는거 아시죠? 나온다 해도 이 가격은 아닐 겁니다....“     


사장님이 문자를 넣을 기세로 핸드폰을 집어들었을 때, 정여사가 다급히 사장님을 말렸습니다.     


“잠깐만요. 사장님!! 제가 내일 오전까지 전화드릴테니 그때까지만 문자 보내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부탁드려요.”     


’꾸벅‘ 인사까지 하고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할 듯, 부동산 명함을 두 손에 꽉 움켜쥐고 도망치듯 부동산을 나온 정여사는 그 길로 남편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보..오늘 꼭 빨리 와요. 응??”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온 남편 앞에 맥주를 한 캔 꺼내놓고 마주앉아 오늘 들은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으며 어찌할까...의논을 해보지만.... 피곤한 남편은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마음대로 하라고, 근데... 당신 대출 내고 불안해서 괜찮겠어?  미적지근하기만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샤워를 하겠다며 목욕탕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외로운 정여사의 고민이 깊어갑니다. 그리곤 한편으론 궁금해집니다.

    

’근데...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집 주인은 이 집을 지금 팔고 속상해서 어쩌지? 팔고나서 막 오르면 어떡하나?? 그냥 모른 척 하면 되는 건가? 잔금할 때 분명히 얼굴을 볼텐데.. 불편하면 어떡하지.. 이래도 되는 걸까?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그 집을 사기만 하면 곧 엄청 오를텐데..얼마나 급해서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주인은 곧 서류가 통과하는 걸 모르나? 그럼 나는 사실을 속이고 사는 셈이 되는 건가?      


사자마자 집값이 막 오르면 어쩌나 하는 행복한 고민 사이사이로 집주인에게 미안한 양심의 가책이 불쑥불쑥 들어오기도 하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대출을 받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적금 만기가 되면 하려고 계획한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기도 하고...평소 깔끔한 정여사건만, 지저분하게 놓여있는 먹던 안주그릇과 맥주잔을 치우지도 않은 채 식탁에 앉아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널뛰는 생각들을 잡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잠이 든 남편의 우르렁그르렁 코고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맣게 타들어 가는 정여사의 마음처럼 속절없이 밤도 깊어져만 갑니다.       




3. 박사장        


만약, 박사장이 김여사한테 한 말이 맞다면, 김여사는 적절한 시기에 집을 잘 매도하고, 매도한 돈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갈아탈 수 있는 도약의 시드머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매도한 돈으로 투자한 상가가 잘못되거나,, 주식을 샀다가 반토막이 나거나, 사지 말아야 할 엉뚱한 부동산을 사서 매도한 돈을 허망하게 날릴 수도 있겠지요. 순간의 선택으로 김여사는 천당으로 가는 기차를 타거나, 지옥행 열차에 탑승하는 거죠..  그리고.. 박사장은? 양타로 중개수수료를 받고 식구들과 최고급 일본산 와규로 즐거운 고기 파티를 합니다.     


만약, 박사장이 정여사에게 한 말이 맞다면, 정여사는 집을 사자마자 터진 호재로 집값이 쑥쑥 올라 대출이자를 갚는 것이 힘든 줄도 모르고 신이 날 것이고, 반대로 김여사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훨씬 더 좋은 가격에 집을 매도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신축이 된 집에서 살 수도 있었을텐데, 성급한 본인의 판단으로 손해를 입게 되어. 속상한 마음에 홧병이 날 것입니다.

어쩌면... 사장님의 호언장담처럼 그렇게 잘 풀려가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순풍에 돛단배같던 재건축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커녕 조합원들간의 갈등으로 어그러지고, 호의적인줄 알았던 서울시의 협조도 이루어지지 않아, 집값은 떨어지고, 낡아만 가는 집에서 기약없이 재건축을 기다려야 하는 정여사는 맥이 풀려버릴지도 모르죠. 그리고.. 박사장은? 양타로 중개수수료를 두둑히 받고 식구들과 투뿔 한우로 맛있는 고기파티를 합니다.    

 



이 글은 실제인물과 부동산, 특정 지역과는 무관하며, 실제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부동산 사장님은... 매도자편도 매수자편도 아닙니다. 부동산은 무조건 수수료편입니다.

여러분은 김여사일까요, 정여사일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결정을 합니다. 순간의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악재가 되어 씻을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남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뜻하지도 않았던 의외의 대박으로 이어져 마음이 든든하고 어깨가 으쓱해지도 하겠죠. 인간인 이상, 나름 심사숙고를 하여 내린 결정임에도 결과적으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또 그 반대로 행운의 신이 함께 하시는 것처럼, 기대도 안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기도 하구요.


인생지사 새옹지마’ 라고 절망스러운 상황이 최고의 행복으로 바뀌기도 하고, 당시에는 희망에 부풀게 했던 상황이 결과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게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미리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부디 옳은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공부도 하고, 강의도 듣고, 여러 가지 정보를 선별하여 고민을 하는 거겠지요.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는 세상에서 내 재산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들은...끊임없이 공부하고, 찾아보고, 물어보고,확인하고, 또 확인하되, 나 자신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내 선택에 의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키우는 것..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요. 


지금 가지지 못했다고 너무 절망하거나, 지금 원하는 걸 가졌다고 너무 교만하지도 말고,  항상 중심을 지키며, 의연하게 시장의 상황과 상관없이 마음의 평화를 지키며 일상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뒷문으로 슬그머니 기회가 분명히 올거라고 믿습니다.


오늘밤, 김여사도 정여사도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일없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곤히 잠든 '즐거운 나의 집' 에서 아늑하고 평화로이 숙면을 취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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