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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Nov 14. 2024

빠진 생선 두마리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출근 준비중이라 바빠요.. 하는데 점심은 먹고 가냐... 다정하게 묻길래, 늙은 아부지한테 너무 싹퉁바가지 없었나 싶어, 어깨에 걸친 채 건성으로 받던 전화를 다소곳이 고쳐들고 이른 아점을 먹었다고 말하려는 찰나, 전화기 너머로 낚아채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받은 엄마의 목소리.


"들어봐라. 대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침 일찍부터 이런저런 일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분주하게 움직였고, 헤쳐모여를 하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점심 무렵 집으로 돌아오셨단다. 엄마 혼자라면 그냥 퍼질러 앉아 밥이고 뭐고 일단 쉬고 싶었겠지만, 삼시세끼 한끼라도 건너뛰면 큰일나는 줄 아는 먹성 좋으신 영감님, 그래도 평생 가족 위해 동분서주하신 세월이 얼만데, 아무리 피곤해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겠지.


1년 내내 '최소' 5첩 반상으로 시작하는 갖은 밑반찬을 먹을만큼 종지종지 꺼내고, 엊그제 이모 할머니 댁에서 품앗이해 온 김장 김치 빨간 속에, 겉절이 배추에, 탱탱한 굴까지 씻어 담고, 고기 반찬 찾을테니 불고기도 좀 굽고....찌개가 있어도 국을 찾고, 국이 있어도 찌개가 있어야 하는 양반이니 어제 끓여놓은 된장국도 따끈하게 데웠을거다.


미키 마우스가 휘두르는 마법 지팡이의 움직임에 맞춰, 빗자루와 대걸레가 저절로 춤을 추며 청소를 하는 디즈니 판타지아의 마지막 장면처럼,  냉장고에서 반찬들이 줄줄이 나와 밥상에 앉았을리 없고, 가스불이 저절로 켜지며 국이 보글보글 끓었을리도 없으며, 김치냉장고 안에서 당당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돌뎅이 같이 무거운 김장김치 통에서 무배추 속과 겉절이 배추가 지들 발로 걸어나와 식탁 위로 기어올라갔을리도 만무하니, 결국 부엌을 종종걸음으로 오가며 국 끓이고, 반찬 소분하고, 불고기 굽고, 굴씻고...일련의 이 모든 과정은, 어젯밤  자식 걱정으로 설친 잠에 오늘 아침 동분서주의 피로까지 누적된 이 집 마나님의 손을 오롯이 거쳤을 터.


이럴리는 없었을 거고...


그런데, 자리에 앉은 이집 영감님 하시는 말씀 좀 보소.

"이거 내가 너무 꿈을 크게 가졌나보네..."

댓바람부터 노구를 이끌고 이리뛰고 저리뛴 후 느지막히 앉은 점심 밥상에 거는 기대가 컸을 거다. 분주한 아침에 대한 보상을 받듯, 어느 것 하나  미흡함 없이 그야말로 딱 맞는 '완벽한 밥상'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자리에 앉았을 거고. 그러나 아뿔사! 에피타이저 삼아 겉절이에 김치 속 얹고 굴을 턱! 올려 한입 팍! 베어문 그 놈의 첫입이, 그만 양념이 살짝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한국인이라면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미뢰에서 느껴지는 초겨울 김장 겉절이의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너무 설풋하지도 무르익지도 않은, 파르르 아작~하니 싱그러우면서도 미묘하게 풀죽은 듯한 그 완벽한 맛의 균형의 어디쯤...그 볼그레죽죽하니 알싸~한 그 맛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좌절된 꿈'이라고 까지 표현할건 또 뭐람... 할배도 참....오히려 수십년 세월을 하루같이 식구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며, 시나브로 숨죽어갔을 엄마의 꿈이 저 배추이파리 켜켜이 베여있을지도..


예민한 마나님이 그걸 못 알아들었을리 없고... 밥상을 엎어도 시원찮을 분노를 누르고 있는 마나님 눈치를 살피며, 당신도 잘못했다 싶으셨는지 싸해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옆동네에서 출근준비를 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유례없이 다정한 안부를 물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이 황당하고 억울함을 내 입으로 말하겠노라.. 엄마는 전화기를 낚아채 간거고... 그 전화를 받은 딸은, 안 그래도 회의 시간에 늦어 맘이 바빴음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지라, 두손으로 다소곳이 전화기를 붙들고 두 노인네의 점심상의 풍경을 고스란히 상상하며 분노한 엄마의 맞장구를 가만가만 쳐드린거고... 이리 된 연유였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와중에 지잉~ 진동이 와서 보니, 문제의 그 밥상 사진이 카톡으로 전송되어 있다.


"대체. 이 밥상에 부족한게 뭐냐! 엉??"

 가만히 보던 나.

"응. 빠진게 있네. 엄마."

"이렇게 차렸는데 뭐가 더 있어야 해!"

"생선 두 마리가 없구만. 눈치과 염치." ㅎㅎㅎ


주부라면 알거다. 김치에 물만 말아 먹어도 밥상 차리는 일은 저절로 되지 않는 수고로움이라는 것을.

이번 판은 아부지가 잘못했네. 죄송하지만 도저히, 편들어드릴 건덕지를 콩나물 대가리 한알 만큼도, 멸치 눈깔 한개만큼도 못찾겠습니다. '마나님 잘못했습니다.' 하시고 설겆이나 뽀득뽀득 깨끗하게 하십시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나 때문에.... 뒤늦게 속썩여서 정말 죄송해요 ㅠㅠ)


문제의 점심밥상. 시금치, 꽈리고추멸치볶음, 멸치견과류볶음, 달래장아찌, 콩나물무침, 알타리김치, 불고기, 김장 겉절이, 굴, 봄동 된장국.여기서 뭘 더? 아부지 잘못하셨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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