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했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써 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생각해보니 우리 연애 이야기라면 술술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실행에 옮겨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블로그에 먼저 포스팅을 작성하며 그때 그 시간을 써 내려갔다. 10회를 올리고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면서 코스타리카 여행기를 덧붙였다.
매 에피소드를 쓸 때마다 5년 전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세상 앞에 잔뜩 겁을 먹고 움츠려 들어있던 나. 사랑 앞에서 냉소적이었던 나. 소극적인 삶을 살았던 내가 솔로 여행을 떠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여행을 적극 추천한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그때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을 통해 코스타 리카 여행부터 조금씩 더 주체적이게 변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15개의 에피소드를 쓰면서 참 많은 감정과 마주했다. 때론 너무 설레어 심장이 터지는 듯 한 감정을 느꼈고 (그런 에피소드를 쓴 날엔 남편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여서 포스팅 올리고 와락 안기도 했었다), 때론 고통스러워 잠시 노트북을 덮고 감정을 다스려야 했던 적도 있다. 이미 정리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글을 통해 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때 그 시간을 써 내려갔다. 한번 시작한 것, 끝까지 해서 매듭을 짓고 싶었으니까. 글로 생각을 옮기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넘어가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쓰다 보니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을 제대로 보고 비로소 처리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것이 글 쓰기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이런 글을 봤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이 문단을 읽고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우리 연애 이야기를 쓰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진 것 없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 흩어져 있던 삶의 일부분이 정리됐다. 마음속 뒤엉킨 감정을 마주하고 그것들을 단어로, 문장으로 풀어냈던 경험이 삶을 보는 내 시선을 바꾸었다. 그리고 삶이 전부 달라졌다. 글로 통해 얻은 새로운 시선은 다가올 내일을 좀 더 주체적이게 살아갈 힘을 주니까 말이다. 덤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글을 통해 추억을 꺼내볼 수도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며 다음 챕터 이야기도 써 보려 한다.
이런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누가 읽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그가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저하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살면서 또 많은 숙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숙제가 너무 벅차서 지칠 때마다 내 청춘이 담긴 이 작은 책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망설임 없이 사랑에게 다가갔던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 거침없었던 젊은 날의 나로부터 위로받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통해 가장 나 답게 삶에 응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