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의 첫 발
90년대는 세월이 느슨할 때라 DL(Drivers License)을 따기가 그닥 까다롭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SSN(Social Security Number)을 갖는 것이 지금처럼 까다롭지 않을 때라(Bank account를 open 하겠다 하면 SSN을 만들 수 있었다는) SSN이 있는 상태에서 DL을 따자니 필기시험 후 예약을 통해 실기시험만 보면 대부분(?)이 다 붙는다는 얘길 듣고, 마음 저편에 벌써 따놓은 당상으로(한국에서 이미 차를 운전하고 다니다왔기에, 실기쯤이야...). 그나저나 안절부절 아내가 걱정이었고, 당장 장을 보더래도 차를 타고 가야 했기에 차 없이 이 불타는 LA 복판을 거닌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한인 업소 주소록' 뒤에 부록으로 붙어있던 기출문제를 이용해, 같이 간단히 일주일 공부하고 DMV에서 본 실기시험 결과는, 아내 pass 나는 fail. 어차피 아내 실기준비는 단기간 사설 coach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는데, 잘못하다간 나만 임시로 가져온 국제면허로 일 년을 버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은근 들기까지 하고.
다행히 두 번째 필기(지금은 당일에 여러 번의 필기가 가능하다)를 수일 후에 통과했지만, 나의 버벅거림을 보면서 아내의 면허증에 대한 강박은 순식간에 날아간 듯하다. 며칠의 도로연수 후에 당당히 실기에도 합격한 아내는 'natural born driver'라며 나와의 비교를 수년간 우려먹고 있었고(다행히 나도 시험관을 몇 번 겁먹이며 간신히 합격은 했다).
여전히 california가 고수하고 있는 남 다른 운전법은 차선 변경 시 운전자가 고개를 돌려 직접 돌아봐야 한다는 것. 몸에 베기까진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사각지대에서 튀어드는 옆열의 차를 미리 알아보기엔 이것 만큼 직관적인 게 없다. 물론 최근에 나온 'blind spot sensor'가 열일을 하지만 아직도 sensor에 맡기기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아내의 첫차는 당시 유행하던 Dodge Caravan. 넓고 수납이 좋은 이 차로 아이들을 키우고 날랐다. 고질적인 미국차의 문제인 gear oil이 새서 차를 갈아치우기 전 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