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매체인 디펜스포스트는 우크라이나의 베테랑 파일럿 블라디슬라프 사벨리에프 대위가 작전 중 전사한 사실을 다뤘다. MiG-29기 조종사인 그가 미국의 콜럼버스 공군기지에서 기본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우크라이나로 복귀한 지 불과 3개월 만이었다.
미 공군은 세계적 수준의 러시아를 상대로 공중전을 수행한 베테랑 파일럿의 실력에 맞는 F-16 기종 전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 위탁교육생인 만큼 절차대로 조종교육의 연습생 코스에서 9개월 넘게 T-6 훈련 비행을 이수하게 했다. 이 지루한 조종교육에 지쳐 미 공군과 우크라이나군 측에 코스단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시간낭비문제가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의 실전 비행감각만 떨어뜨려는 중대한 과오였다. 귀국 후 그의 본연의 임무인 MiG-29 조종에 필요한 보수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바로 전투에 투입되면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타까운 소식에 퇴역한 미 공군 대령 제프리 피셔는‘미군의 융통성 없는 프로그램이 그를 죽였다.’고 지적했다.
노트 : 그런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하면 만들어질까? 관료제 조직은 효율적인 조직이다. 규정과 상충되는 지시를 하려 하지 말고 관련 규정을 바꿔라. 그러면 모든 것이 빠르게 해결된다.
스티븐머피 시계마스의 책 『스탠퍼드식 리더십 수업』에서는 조직의 권력구조 때문에 부하들이 상사의 지시를 따를 뿐이라고 말하며 다음의 사례를 소개한다.
1999년 12월 22일, 대한항공 8509편은 런던을 출발하여 밀라노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륙한 지 약 1분 만에 90도로 기울어진 채 추락해 탐승했던 승무원 4명이 모두 사망하였다. 사고 원인은 기기고장이었는데 이륙 후 밀라노를 향해 좌선회를 할 때 기장의 기기에 반응이 오지 않았다. 계획 회전하다 보니 각도가 너무 높아지게 되어 비행기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조사결과 부기장의 기기는 정상 작동했기에 경고음도 울리고 기장이 잘못 조종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장이 부기장의 요구와 조언을 묵살하는 등 상당히 고압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도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01편 사고를 다룬다. 1997년 228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의 원인도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에도 기장이 착륙을 강행했지만 부기장이 '노(No)'라고 직언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권위주의적 문화와 그에 순응하며 사회적 처신을 하고자 했던 조종승무원의 망설임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 두 사고 이후 기장과 부기장간에 상하관계와 고압적인 태도를 없애기 위해 한국어를 금지하고 영어만 사용하게 하였다.
노트 : 보라. 규정을 바꾸면 된다. 한국어 금지 조항이 고압적인 태도를 해결하지 않는가?
심리학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볼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서로 다른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종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언급하여 유명해진 내용이다. 심리학자 Keith Stanovich (키스 스타노비치)와 Richard West (리처드 웨스트)는 '인간의 뇌는 자동적이고 처리가 빠른 시스템 1과 의식적이고 처리가 느린 시스템 2의 두 가지 모드로 사고를 처리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화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빠르게 알 수 있다. 시스템 1이다.
보자마자 곱셈 문제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답을 내려면 계산해야 한다. 느리다. 시스템 2다.
∎ 시스템 1은 직감적이고 빠른 사고 모드이다.
- 노력이 거의 불필요하다. 저절로 빠르게 작동한다. 맹수나 우박을 무서워하는 등 직감적으로 빠르게 위험을 피한다.
∎ 시스템 2는 논리적이고 느린 사고 모드이다.
- 복잡한 계산, 논리적인 사고는 시스템 2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주의력을 필요로 하고 산만한 상태면 집중할 수 없다.
∎ 의사결정은 시스템 1에서 시스템 2 순으로 이루어진다. 시스템 2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17X24와 같은 계산문제에 대해 시스템 1이 답을 줄 수 없으면 시스템 2가 움직인다. 반면 의식하지 않으면 시스템 1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결과로 정해버린다.
앞의 사례는 학생들에게 사고체계가 정지되는 순간에 대한 스토리다. 관료제 조직에서는 방향이 부합하지 않으면 사고체계가 혼돈되는 오류가 생긴다. 이는 마치 인간의 사고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꼬이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대표적인 오류는 비주의성 맹목이다.
실험에서는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농구 패스 횟수를 세도록 하게 하고 영상을 보여준다. 다른 집단은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고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 중간에 나오는 고릴라 탈을 쓴 인물이 지나가는데 패스 횟수를 세던 집단은 고릴라를 놓친다. 세지 않던 집단은 고릴라 탈을 쓴 인물을 모두 발견한다. 이는 인간의 논리적이고 느린 사고 모드인 시스템 2가 과부하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예상외의 상황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상사의 말과 규정 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고민되는 상황이 온다. 수준이 낮은 조직은 말대로 하는 것이 사내정치에 유리하고 승진과 같은 보상을 빌미로 목줄처럼 쥐려고 할 것이다.
관료제 조직의 특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서장들은 착각한다. '자신이 부담을 주지 않으면 부서원들이 편할 것이다.', '자신이 시킨 일이 없는데 왜 바쁘다고 하지?'라는 성립할 수 없는 착각을 한다. 믿지 않겠지만 관료제는 효율적인 조직이다. 상사가 어떤 일을 지시하든 지시하지 않든 내가 해야 할 일이 문서로 정해져 있다. 이것이 관료제의 특성이다.
분업화, 계층화, 규정된 절차, 문서화된 규칙, 피라미드 형태의 서열화 등등으로 설명하는 체계. 관료제다. 학교, 군대, 정부기관, 상당수의 회사 역시 관료제에 해당한다. 나 또한 대표적인 관료제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후보 선수가 백업하고 있지 않다면 결국 관료제다) 나의 직위 계정으로 오는 일들은 누군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우리 팀의 다른 직원 역시 내가 모르는 다른 일들이 쌓이고 있다. 관료제의 특성인 분업화 때문이다.
규정, 절차, 연간 계획된 일정에 따라 예산이 할당된 사업들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고 업무협조 메일이나 공문이 계속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온다. 잡초처럼 자란다. 정말 업무계선에서 빠져서 할 일이 없다면 업무메일이나 공문이 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 사람만이 여유가 있다.
리더메이커 노트를 통해 제법 훌륭한 리더가 만들어졌더라도 그의 위치가 어디인가? 앞서 인재 트렌드와 캐즘이론에서 언급했던 혁신자 그룹에 있지 않다. 최고 수준의 A Player들이 극혐 했던 관료제와 사내정치가 가득한 곳에 던져진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능해서가 아니다. 사고 시스템이 주의력착각처럼 에러가 발생한다. 규정에는 A를 하게 되어 있는 데 부서장은 B를 고집할 때다.
답은 앞의 사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