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남자친구라고?

말도 안 돼

by 김열매

고백을 받은 후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으로 볼 거였으면 애초에 사귀었지, 친구로 곁에 두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의 고백은 처음이 아니었다. X를 만나기 전에도 한차례 있었지만, 진지한 고백은 아니었기에 장난으로 받아치며 무마했다. (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워 피했다.)


“내가 알아. 우리는 굉장히 잘 맞아. 만나야 돼. “


대체 이런 확신에 찬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됐다. 서로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했어도 우리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고백한 사람 성의가 괘씸해 일단 ‘썸’ 비슷한 것을 타보자고 했다.


게다가 직전 두 번의 연애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 사람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카톡과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위 요즘 말하는 가스라이팅인가 싶을 정도로 집요했다. 고백받은 이후 집에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엄마가 물어왔다.


“딸, 왜 그래?”

“남사친한테 고백받았어. 좋은 애인 건 아는데, 남자로 안 보여. “


내 고민에 엄마는 파격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이미 고백받았으면 친구 사이는 끝난 거 아니야? 어차피 끝날 사이면 만나보고 끝내!”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엄마의 말을 계기로 조금씩 열린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게 됐다. 어차피 친구사이로 돌아가지 못할 거면 정면승부를 택하겠다!


그렇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처럼,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솔직히 고백을 받아들이던 그 순간에도 아직 완벽히 남자로 느껴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진짜, 진짜 잘해줄게.”


철없고 순수한 이십 대 초반이나 내뱉을 법한 말이었다. 삼십 대를 코 앞에 두고 재고 따지는 연애를 할 나이에 저런 맹목적이고 조건 없는 애정이라니.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의문스러웠지만 내심 고마웠다. ​


“네가 내 여자친구라니, 너무 기쁘다.”


네가 내 남자친구라고? 나는 믿기지 않아!




그와 연인이 된 이후 나는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얘가 이렇게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던가? 새로운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여태껏 내가 해온 건 연애가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 말에는 힘이 있다.


너는 멋진 사람이야.

너는 좋은 사람이야.

너는 대단한 사람이야.


무슨 마법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그는 내게 좋은 말만 주었다. 죽어가던 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점점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꼈다.


늘 연애를 하면 ‘갑’처럼 보이지만 ‘을‘의 위치에 존재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익숙했던 탓에 처음엔 그의 애정공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연애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데, 처음 해보는 게 굉장히 많았다. 내가 그동안 똥 차도 아니고, 리어카를 끌었던 건가 싶었다.


올바른 사랑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랑만 받으니 사람이 마구마구 자라난다. 뿌리가 단단해지니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안정감이 생기고 굳건해졌다. 이런 변화가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게 잘 맞았다.

사소한 취향부터 시작해서 가치관, 입 맛 까지도!


연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문득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멋있어 보이는 거다. 내 눈이 드디어 미쳤구나. 아무래도 그는 나를 세뇌시키는 일에 성공한 것 같았다.


한 달 만에 남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도 충격인데, 그가 던진 다음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난 너랑 결혼할 건데?”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