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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전지적 반려견의 시점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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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Jamal Oct 14. 2020

Ep.03 : 만남

전지적 반려견의 시점

늘 그랬듯이 오늘 하루도 배가 고파 눈을 뜬다. 역시나 내 밥그릇이 비어있다. 할짝할짝... 움직이지 않는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강제 기상시킨다. 주인이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나도 주인을 쳐다본다. 주인이 하품을 한다. 나도 하품을 했다. 배는 고픈데 주인이 행동이 굼뜨다. 주인 얼굴에 내 엉덩이를 갖다댄다.

주인과 재회한 후,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내 마음 역시 안정감을 찾았다. 가끔씩 주인이 늦게 들어오면 나는 주인에게 격한 질문을 날린다. "뭐했어? 누구 만났어? 뭐 먹었어?" 등등. 역시나 내 질문에 대한 주인의 대답은 만족스럽지 않다. 그저 나를 만지고 애정표현하는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좋다.

시간이 지난 어느날, 주인에게서 묘한 냄새가 난다. 나의 냄새가 배여있는 옷이 아닌 다른 냄새가 감지되었다. 짧은 내 견생의 경험으로 봤을 때 외출 준비의 신호다. 나도 자연스럽게 앞발을 사용해 내 얼굴을 세수한다. 그리고 주인을 바라보며 눈썹을 올리고 혀를 내민다. 혹시나 나를 두고 나갈까봐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바깥 공기가 차다. 건강 유지를 위해 내 코를 핥는다. 따뜻한 주인의 스웨터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지나가는 많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 훗... 나란 강아지... 밖의 상쾌한 공기와 사람들. 주변 분위기에 갑자기 흥분이 된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은 주인의 품에서 눈높이를 맞추는게 좋다. 주변이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낯선 냄새의 주인과 함께 계속 길을 걸으며 세상을 관찰했다. 어느 공간에 침입하고 나서야 주인의 움직임이 멈춘다. 내 코로 낮선 사람이 접근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내 코와 눈이 그 사람을 인식할 수 있을 거리. 이 이상 가까운 거리는 내 경계심이 그를 허락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개념이 있다. 그리고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주인이 반가운 소리를 내며 거리를 좁힌다. 이상하게 긴장감이 조금씩 해소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냄새를 섬세하게 맡는다. 뭔가 포근한 냄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처음 만났다.

미리 얘기하지만 내 가치관은 이미 정립된 나이다. 이후, 포근한 냄새의 그 사람은 자주 우리 주인과 같이 내가 사는 공간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주인의 눈치를 보며 꼬리로 형식적인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 또한 나에게 소리로 형식적인 반가움을 표시했다. 나를 억지로 만지려 하지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기본이 된 사람이다.

그렇게 점점 그 사람과 자주 만났다. 나에게 조용히 시선을 고정하며 나를 관찰하는 것 같다. 나도 조금씩 그에 대한 경계심을 없앤다.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나에게 맛있는 것을 직접 준다. 이 사람 왠지 본능적으로 신뢰가 생긴다. 이성을 잃고 먹고 있을 때, 내 이마를 처음으로 만진다. 내 마음은 아직 허락하지 않았지만 봐준다. 이 사람을 만나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우리 주인이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왠지 분위기가 나른하고 편안해서 또 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