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은 월 15만 원 신축빌라 _ LH 신혼부부 매입임대
결혼식을 6개월 앞둔 2021년의 어느 날,
이제는 정말 신혼집을 구해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신청한 공고는 강서 신혼희망타운이었다. 그때 ‘신혼희망타운’이라는 유형이 막 생겨나던 시기였는데, 시세보다 저렴하게 입주한 뒤 이후 발생한 시세차익을 정부와 나누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예비 신혼부부 주제에(?) “당연히 쓰리룸 아파트를 가야지!” 하며 6억 원짜리 전용 59㎡ 타입에 도전했다. 하지만 100호 모집에 4,492명 지원, 광탈이었다.
신혼희망타운에 이어 행복주택까지 연이어 높은 경쟁률 속에 낙첨. 그러던 중 LH 신혼부부 매입임대 공고를 발견했다.
“맞아, 이게 있었지!”
처음엔 예비 신혼부부의 패기로 신축 쓰리룸 아파트를 노렸지만, 이제는 신축 빌라라도 구할 수 있다면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나는 강서구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강서 지역에 올라온 빌라 매물들을 살펴보았다.
강서구에는 총 6호가 올라와 있었는데,
A에 4호, B에 2호로 나누어져 있었다.
지도를 켜고 거리뷰 기능으로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두 곳 모두 2019년에 지어진 깔끔한 신축 빌라였다.
A는 모두 투룸
B는 투룸 하나, 쓰리룸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예비 신혼부부 자격으로 지원할 예정이었고,
매물 자체가 너무 적게 나와 있어
이미 아이가 있는 점수가 더 높은 부부들이 지원한다면 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문득 내가 취업 준비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떠올랐다. 나는 원래 '이왕이면'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잘하는 사람은 많고 뽑는 인원은 너무 적었다. 스물셋이었던 나는 CBS 디지털 콘텐츠팀 인턴으로 6개월간 일하며 ‘씨리얼’이라는 채널을 만들었었다. 매번 동기들과만 영상을 만들다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8명의 팀원들은 각자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하는 매 순간이 배움이었다. 그런데 취업시장은 존경하던 팀원 같은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이 몰리는 게임이었다. 오죽하면 고시에 붙는 것만큼 어렵다고 '언론고시'라고 불렀겠는가.. ‘이게 과연 맞는 게임일까?’라는 고민이 들던 찰나, 드라마 PD 면접을 보러 갔던 방송사에서 한 면접관이 내 서류를 보다 이렇게 물었다.
“MCN이 뭐예요?”
물론 그때 한국에서 ‘크리에이터’라는 개념이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할 때였다. 그 당시엔 가족들에게도 크리에이터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만 소개했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이고... 어떻게 지상파 방송국 면접관이 MCN이 뭔지 나에게 물을 수 있지?라는 생각에 그 길로 깔끔하게 취업준비를 접고 내 영상을 본격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방송국에서도 면접비 5만 원만 준채 나를 떨어뜨렸다.
그때 문득, 성현이가 나와는 가까이 살지만 강서구가 아닌 양천구 주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양천구 쪽도 한 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고, 한 건물에 15개 호수가 올라온 신축 빌라를 발견했다.
그중에는 쓰리룸도 4호나 있었고,
무엇보다 강서구 매물보다도 더 최근에 지어진 ‘찐(?) 신축 빌라’였다.
LH 공고문에는 대체로 내부 사진을 담은 PDF 파일이 함께 올라온다. 하지만 이 빌라는 워낙 갓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첨부파일이 없었다. 건물명을 검색해 부동산 매물 사진이라도 보려 했지만, 이곳은 정말 단 한 장의 이미지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혼부부 매입임대 유형의 장점 중 하나는 실시간으로 접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접수 당일, 예상대로 강서구 매물들은 워낙 물량이 적어 사람들이 조금만 몰려도 금세 경쟁률이 치솟았다.
반면 양천구 빌라는 아무래도 사진이 첨부되지 않은 탓인지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15호 모집에 약 30명이 지원중이라 경쟁률은 2:1에 불과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거리뷰로 확인했을 때 건물 외관은 깔끔했고,
6층 이상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갓 지어진 신축이라는 점이 끌렸다.
그래도 이제 막 지은 집인데 설마 장밋빛 벽지로 도배되어 있진 않겠지 생각하며, 우리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쪽에 베팅하기 위해 강서구가 아닌 양천구를 선택했다.
15호 모집에 34명 지원
최종 경쟁률은 2.4:1이었다.
[Web발신] [LH 서울서부권주거복지지사]
*서류제출대상자 선정 및 서류제출 일정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Ⅱ 전세형을 신청하신 고객님께서는 서류제출대상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서류제출 일정을 안내드립니다.
*서류제출대상자 발표 확인 : LH청약센터-인터넷청약-청약결과조회-서류제출대상자 조회 (첨부파일 확인 : 서류제출 안내문 참고, 공사 양식에 전부 기재 및 서명, 미비되는 서류 없이 꼭 확인 제출)
1. 서류제출 일정 : 2021.10.18(월) ~ 10.20(수)
2. 서류제출 방법 : 등기우편 접수만 가능 (일반우편 접수불가) - 서류제출 기한 내 (21.10.18~10.20) 우체국 소인이 찍힌 등기우편에 한하여 인정됩니다.
*공고일 21.09.30 이후 발급한 서류만 인정하며, 제출하신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표등본, 주민등록표초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발급 시 주민등록번호 13자리 모두 표시되도록 발급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2.4:1의 낮은 경쟁률 덕분에 우리는 처음으로 서류에 선정될 수 있었다. (보통 서류 합격자는 최종 당첨 인원의 2~5배수 정도로 선발된다)
필요한 서류들을 하나하나 여러 번 확인한 뒤, 아침 일찍 우체국으로 달려가 익일특급으로 발송했다.
다른 유형들보단 결과 발표가 빨라서,
약 두 달 후면 최종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발 이번엔 되기를ㅡ 마음속으로 되뇌며 우리는 남은 결혼 준비를 이어가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렇게 12월이 되었다.
[LH 서울서부권주거복지지사] 고객님께서 신청하신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Ⅱ 전세형 (서울 양천구) 예비입주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객님의 현재 예비순번은 17번입니다.
*예비자 순번 발표 조회 1. ARS 1661-7700 2. LH청약센터(https://apply.lh.or.kr) → 상단메뉴 ‘인터넷청약’ → ‘청약결과조회’ → ‘당첨/ 낙찰자조회’ *계약체결 안내문은 등기우편으로 발송할 예정이며, 우편발송 후 등기번호를 문자로 안내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종발표날, 나는 예비 17번이라는 번호를 받았다. 전체 15개 호수 중 두 명이 포기해야 들어갈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우리가 예비 신혼부부에 2순위였으므로 뒷번호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된 것도 아니고 안된 것도 아니었다. 안 됐다고 보기에는 생각보단 앞자리고 됐다고 보기에는 안심할 수 없었다. 이후 과정은 이랬다. 1번부터 30번까지 한차례 집을 본다. 각자 원하는 집의 우선순위를 작성한다. 이후 1번부터 15번까진 배정받은 집이 마음에 들면 계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포기. 16번 이후 뒷번호들은 앞번호의 선택에 따라 달려있다.
우선 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엄마, 성현이, 나는 셋이 신정역과 목동역 사이에 있는 빌라로 향했다. 집은 두 역의 정중앙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몇 걸음만 가면 전봇대 전선이 얽힌 오래된 빌라들이 줄지어 있었고, 왼쪽으로는 번쩍이는 타워팰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근처에 큰 마트도 있고, 빌라가 있는 거리는 한적해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입을 틀어막았다. 내부 사진이 없던 게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 걱정했던 장밋빛 벽지는커녕, 튀는 아트월 하나 없는 깔끔한 내부가 우릴 환영하고 있었다. 6층부터 호수들을 차례로 둘러보는데 쓰리룸인 호수들은 크기도 차원이 달랐다. 부엌은 시원하게 트여 있었고, 화장실도 두 개나 있어 살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17번이라는 나의 번호를 떠올리면 이 집은 당연히 나에게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대신 투룸이라도 마음에 드는 곳을 꼼꼼히 기록해 두며 원하는 순서를 정했다.
또 막상 보니 전용면적 26, 27, 28㎡의 차이는 체감상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용면적보다 중요한 건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방 구조였다. 예컨대 전용 28㎡라도 방 구조가 어색하면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났고, 반대로 전용 26㎡라 해도 채광이 좋고 층이 높으면 훨씬 쾌적하게 느껴져 우선순위가 올라갔다. 그때 비로소 전용면적 1~2㎡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훗날 100:1 경쟁률을 3:1로 줄이는 결정적인 키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집 열람이 끝난 이후, 카페에서 의외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전 15번인데 억울해요, 저보다 뒷번호들이 유리한 거 아닌가요???!!"
이 불만 섞인 글의 내용은 이랬다. 1번부터 15번까지는 원하는 호수들을 우선순위별로 제출한 후 원하지 않는 집이 배정될 경우 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특히 15번의 경우 앞번호가 포기한 호수를 확인하지 못한 채 이미 제출한 우선순위 내에서만 배정받게 된다. 그러나 16번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앞사람들이 배정받은 이후 미계약한 호수 목록 중에서 고를 수 있기에 더 좋은 호수에 배정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 당시에는 글을 보고도 그저 앞에서 먼저 계약하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문자를 받는 순간 바로 그 글을 납득하게 되었다.
[Web발신] [LH 서울서부권주거복지지사]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Ⅱ 전세형 아래 선택 가능한 주택을 원하는 순서대로 계약희망주택목록(양식 변경 불가)을 작성하시어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선택 가능한 주택 (총 5호) - 202호, 203호, 301호, 303호, 401호
제출일시 : 2021. 12. 16(목) 오후 2시까지
(메일 제목에 ‘예비자 성함’, ‘~ 구 예비순번’을 반드시 기재) - 제출방법 : 작성한 계약희망주택목록 양식을 스캔 또는 사진을 찍어 메일 첨부하여 제출 (사진으로 찍으실 경우 반드시 작성하신 내용을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찍어주셔야 접수가능) * 제출하신 주택목록 및 배정된 주택은 일체의 취소나 변경 불가합니다.
계약희망주택 확정 및 계약금 납부 안내 - 2021. 12. 16. 오후 6시 이후 확정된 주택과 계약금(기본임대보증금 10%) 납부를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계약 된 호수가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세상에! 그중에는 쓰리룸도 하나 끼어 있었다. 상태가 좋아 따로 표시해 둔 투룸도 있었다. 당연히 앞번호에서 모두 소진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쓰리룸을 배정받고도 계약을 포기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16번이 쓰리룸을 선택하지 않기를…!”
하지만 16번의 1순위 역시 쓰리룸이었다. 결국 나는 두 번째 우선순위였던 투룸을 배정받았다. 다행히 층수가 더 높아 채광은 오히려 쓰리룸보다 나았다.
보증금 약 1억 5천만 원에 월 임대료 15만 원,
관리비 3만 원
그렇게 나는 2순위였던 401호를 계약했다.
생애 처음으로 은행 1층이 아닌 2층 창구를 몇 번이나 오가며 대출도 받았다.
그런데 첫 번째 신혼집에 최종 당첨이 되자마자 교회오빠 B에게 연락이 왔다.
"지영아! 이 집은 어때?"
그가 보낸 링크는 화곡역 인근, 완공을 앞둔 ‘역세권 청년주택’ 공고였다. 보증금은 8,000만 원, 월 임대료는 8만 원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보증금이 절반 정도로 저렴했다.
게다가 성현이 직장과도 도보 10분 거리였다. 신정역 빌라는 친정이 있는 우장산과 거리가 멀어 걸어가기 힘들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이 집에 당첨되면 친정과 시댁을 모두 도보로 오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신혼집 입주 직전, 두 번째 집 원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키를 받기 전 예비 신혼부부는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2022년 2월 10일 강서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4월에 있는 결혼식을 앞두고 우리는 두 달 먼저 부부가 되었다. 다양한 옵션들이 있는 두 번째 집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가전과 가구는 넣지 않았다. 블로그 체험단에 당첨되어 받은 침대 하나와 급히 마련한 접이식 식탁이 전부였다. 6월에 최종 발표가 나면 또 이사를 해야 하니까 최대한 짐을 두지 않기로 했다. 원래는 결혼식 전까지 입주할 계획이 없었지만, 키를 받은 직후 나는 뜻밖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덕분에 친정을 떠나 홀로 먼저 지낼 수 있는 ‘합법적인(?)’ 이유가 생겼다.
4월 30일, 결혼식을 올린 뒤 비로소 본격적인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세탁기가 없어 빨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근처 코인세탁방에 갔다. 빨래를 돌려놓고 기다리는 동안 무인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목동과 신정거리를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밤 11시에도 타코야끼가 먹고 싶으면 엄마의 허락도 받지 않고 둘이 손을 잡고 나왔다. (그렇게 꿈꾸던 자유를 찾은 신데렐라의 모습이었다) 타코야끼를 종류별로 먹으며 아이패드로 둘이 함께 영화를 봤다. 그렇게 텅 빈 투룸에서 나름 행복하게 두 달간의 신혼생활을 보냈다.
만약 그 당시 행운처럼 보였던 쓰리룸을 내가 얻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후 다른 집들을 알아볼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고, 두 번째 집 이사를 포기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쭉 눌러앉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비 15번도, 16번도 아닌 17번은 엄청난 행운의 숫자였다. 그 덕분에 나는 네 달 만에 미련 한 톨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나는 세 번이나 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행운의 17번은 그렇게 나를 두 번째 집으로 이끌었다.
꿀팁박스
공고에 올라온 매물이 궁금하다면 지도 어플의 '거리뷰' 기능을 적극 활용해 보자. 주소를 입력해 거리뷰를 실행하면 주변 상권과 환경을 임장 없이도 대략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거리뷰에는 촬영 시점이 2024년 1월, 3월, 5월처럼 구체적으로 나뉘어 있어, 날짜 탭을 통해 건물이 올라가는 과정을 구경하거나 정확한 준공 시기를 확인할 수도 있다.
실내가 궁금하다면 입주 청소업체 게시물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고에 내부 사진이 없을 경우, 청소업체나 부동산 중개인이 블로그에 올려둔 글을 통해 실내 구조와 인테리어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