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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12. 2024

내가 보고 싶다면 일식을 매일 보여준다는 남편의 말

쫑알이 둘의 토론을 통한 사고실험 - 과학 편




며칠 전 개기일식을 봤다. 우리는 강변으로 나가는 보트를 탔다. 도착한 항구에는 예상과는 달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주 쉽게 표를 끊었고 치즈버거를 하나씩 사서 승선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달이 태양을 가렸고 그중에 몇 분은 태양이 완전히 가려져 주변으로만 빛을 내뿜었다. 호수의 물결을 따라 윤슬이 반짝이다 그 수가 줄어들었다. 태양의 빛은 꺼져갔다. 시카고 지역뉴스에서는 실시간으로 일식 장면을 중계하며 완전히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에 환호했다. 나는 그걸 세 개의 선글라스를 겹쳐 끼고 실 눈 뜨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똑바로 뜨면 세상은 여전히 밝았다. 가려진 태양은 그 주위로도 빛을 뿜었다. 잠깐 흐려진 도시를 우리는 호수의 중간에서 바라봤다.



 

  미시간 호수를 가로지르는 보트 투어가 끝나고 집으로 타박타박 걸었다. 비치 쪽으로 가자는 말에 우리는 모래사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호수는 바다 같아서 먼 곳에 수평선이 보였다. 파도가 작은 돌멩이들을 밀었다가 당겼다. 







  남편이 물었다. 




  "다음 일식은 언제지?"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에 대해서도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특별하게 지식을 주고받거나 맞고 틀리고를 가리는 토론은 아니고. 그냥 둘이서 종알종알 거린다. 가끔씩 얘길 하다 보면 말이 길어지고 실없는 소리도 많이 한다. 하지만 어떤 과학이론에 대해서 찾아보고 이해하는 게 재미있다. 나름대로 우리는 사고실험? 대화실험을 한다. 한쪽이 특별히 더 잘 아는 주제보다는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얌전하지만 탐구심이 강한 그는 사뭇 진지해진다. 나는 말하면서 생각을 고치고 저쪽은 오래 생각하고 답을 내놓는 편이라 말의 비중은 한쪽에 쏠리긴 한다. 그래서 너무 내 말만 하지 않는지 확인한다. 그 길이를 조절한다고 했는데, 내가 말이 많다는 걸 이미 저쪽도 알고 있더라.




  "인터넷 보니까 99년도인가 엄청 뒤라고 하던데. 한국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르지 않을까?"




  "아니 근데 왜 일식이 지나가는 길이 직선이 아니고 좀 휘었잖아. 왜지??"




  "지구가 자전을 하니까 오른쪽으로 가야 할 테고, 자전축이 약간 휘었으니까?? 지구가 좀 댕그라니까 사진에서는 직선으로 올라가도 지도로 펴놓으면 또 좀 휘어지지 않을까?? 모르겠네."




  "그런가? 태양을 도는 지구 궤도랑 달이 지구를 도는 궤도가 수평인가?"




  "아닐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태양계 행성들도 다 다를 거 같아."




  "그런가?"




  "아니. 근데 지도에 보면 텍사스부터 북동쪽으로 쭉 일식의 궤도가 올라가잖아. 미국 지나면 캐나다 쪽으로 올라가고 이후에는 대서양의 어떤 곳에는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북쪽으로 갈수록 개기 일식이 아니라 부분일식이 되다가 어느 순간 지구에서는 일식을 볼 수 없겠지."




  "뭔 소리?"  




  "왜냐면 태양과 달을 이은 선이 레이저라고 생각하면 그 레이저가 지구에 딱 맞는 순간이 일식인데, 지구에 안 맞는 순간도 있잖아. 지구에 맞지 않더라도 우주의 어떤 선에서는 계속 해가 안 보이는 거야. 일식이 일어나는 거지. 우주선 타고 다니다가 어떤 때에는 달과 태양과 내가 일직선일 수도 있지. 달의 뒤에 숨어서 해 몰래 숨어 다닐 수 있는 어떤 길이 있겠네."




  "그래? 그렇게 치면 우리는 매일매일 일식을 볼 수 있네."




  "??"




  "매일 밤에는 지구가 태양을 가리잖아. 그러면 또 일식이지."




  "음? 그건 밤 아닌가??"




  "그러니까. 밤에는 우리가 지구 뒤에 숨어있잖아."




  얘기를 하면서 해변가를 따라 걸었다. 원래 잠깐 있다가 집으로 가야 하는데 떠들면서 가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 반대로 가고 있었다.




  "굉장히 철학적인데? 지구과학을 배울 때 제일 어려웠던 점이 오른쪽이 서쪽이라는 건데 우리가 우주를 볼 때는 위를 보니 오른쪽이 서쪽. 지도를 볼 때는 아래를 들여다보니 오른쪽이 동쪽인데. 우주를 보면 나를 지우고 지구에서 무언가를 관찰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니까. 헷갈려. 그래서 방향문제 나오면 다들 헷갈려했던 것 같아."




  "오늘 우리가 특별한 일식을 봤다고 생각하겠만 저녁에 해가 지는 걸 보는 게 사실 매일 특별한 우주 이벤트야!"




  걷는 길에는 미국의 하나로마트 같은 타깃이 있고, 우리가 좋아하는 몰리스 컵케익이 있다. 배에서 내리면서 배가 좀 고파서 몰리스 컵케익을 먹자고 약속했지만 떠들면서 가느라 잊어버렸다. 우리는 거의 집 앞까지 와버려서 그냥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는 것으로 합의했다.




  "우리는 지구가 아니니까. 중력이 너무 세서 여기 붙어있기는 한데, 나를 지구로 착각할 수는 없지. 우리는 지구 중력의 영향으로 지구 주변을 하루 주기로 공전하면서 걷고 버스 타고 기차 타고 하면서 무작위로 조금조금씩 움직이는 작은 돌멩이인가?"




  "무슨 소리지?"




  "좀 생각해 보니까 아까 한 말들이 좀 철학적이라서 하는 소리야. 우리가 뛰면 지구에서 조금 멀어지잖아. 비행기를 타면 조금 더. 우주선을 타면 또 조금 더. 우리는 지구와 분리될 수 있는 존재들이야. 만약 우리가 지금 우주선을 타고 나가있으면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순간에는 해가 안 보이니까 그것도 일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구 입장에서 이제까지 달이 태양을 가리는 걸 일식이라고 했지만. 한 사람이 우주라는 말이 그 말인가 다."







  "지금처럼 두 시간짜리 짧은 일식을 보려면 한참 더 멀리 나가야겠는데."




  "길고 짧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니 우리가 점프한 것도 지구와 달의 거리나 태양과 지구의 거리만큼 큰 한 점프 일지도."







  "재밌다. 우리 백화점에서 코리올리 힘 얘기한 게 벌써 1년 넘었다. 저녁에 일식 보여줄게!"




  남편은 지구과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문과이고 나는 지구과학을 잊고 살지만 여전히 재밌어하는 이과라서 그런가 이런 얘기들을 재미나게 한다. 작년 겨울에는 대기의 순환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다는 요청에 따라.. 시카고 시내의 백화점에서 그림을 그려주다가. 그는 왜 바람이 가는 방향의 오른쪽으로 휘냐 물었고 나는 코리올리 힘 때문에 북반구에서는 그래. 남반구는 왼쪽이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 입시위주의 답변에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원리를 내놓아라.) 어.. 그건 지구의 자전 때문인데 자전축을 기준으로 수직으로 촘촘하게 지구의 판을 나누면 한 바퀴를 한꺼번에 돌기 위해서 북극은 제자리 회전만 하면 되는데 적도 부근은 정말 지구 한 바퀴를 다 돌아야 한다. 적도에 있는 우리는 엄청 빠른 무빙워크를 타고 있고 위쪽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우리는 오른쪽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북 쪽으로 뛴다!라고 했을 때 내린 지점을 확인해 보면 가속 때문에 예상했던 지점보다 조금 더 오른쪽에 떨어진 우리를 발견한다. 그것이 코리올리 힘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면 이야기가 끝난다. 이후 올란도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놀이기구 같은 걸 타면서 비슷한 실험을 해보았더니 이제 나도 그도 진심으로 코리올리 힘을 믿게 되었다.




  남편은 나중에 같이 양자역학을 공부해 보자고 한다.. 그의 추천으로 읽은 책에서 과학자들은 10차원과 11차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뜨악. 우리가 살아가는 4차원 이외의 다른 차원들은 어떻게 잘 꼬여있다고 한다. (어떻게?) 여러 차원을 다 이해하면 영화처럼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 되려나? 그렇다면 지금 달이 태양을 가리는 우주의 빈 공간인 어떤 지점에도 내가 존재할 확률이 있다는데.... 




  







  아래의 정보들은 시간 여유가 있으시면 한 번 훑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 내용은 한국 천문연구원의 보도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이번 일식 때 미국으로 일식 관측단을 파견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인데,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개기일식의 원리, 한국천문연구원



  개기 일식은 달이 태양을 가려 태양 전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고,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고 있으니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에 놓일 때 달의 그림자가 지구의 일부 지역에 비치면서 지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태양의 지름은 달보다 400배가 크지만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달이 태양을 모두 가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구 공전 궤도면과 달의 공전궤도면은 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서 보통 4년에 3번 비율로 개기일식이 발생하지만 지역이 한정되어 있어서 이 현상을 관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개기일식은 2035년 9월 2일에 강원도 고성군에서 관측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NASA에 따르면 미국에서 다음 개기일식은 2044년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며 일리노이주에서 관측 가능한 다음 개기일식이 2099년 9월에 일어나며, 2079년에 5월에는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 등지에서 멋진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https://www.kasi.re.kr/kor/publication/post/newsMaterial/29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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