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하루

초밥이 탄생

by 별집

오전 10:30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는 중에 왈칵, 냉이 쏟아졌다. 찝찝한 기분에 마지못해 침대를 벗어나 물 한잔을 마시는데 다시 또 왈칵, 기분 나쁜 낯선 배출이 느껴진다. 혹시...?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보니 젖어있는 속옷에 분홍빛이 돈다. 아, 드디어, 오늘이구나. 어기적 급하게 양치를 하고 병원에 전화를 하고 남편에게 집으로 와야 할 것 같다고 전달한 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옆으로 다시 누웠다.


11:30 남편도착

일어나면 양수가 더 샐까 봐 옆으로 누운 채 남편에게 출산가방 마무리를 부탁했다. 배가 고파 사과 한쪽을 옆으로 누워 씹어 먹는데,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올게 왔다는 긴장과 두려움을 온전히 느끼며 차에 올랐다.


12:00 병원도착

주치의 선생님이 휴무라 다른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다. 양수가 맞고 자궁은 1cm 열렸다며 입원준비를 하라고 했고 초산은 보통 진행이 늦으니 내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후 간호사 선생님의 분만 잘하라는 응원을 받으며 한층 위 입원실로 올라갔다. 기억나지 않는 서류에 사인을 했던 것 같고, 옷을 갈아입고, 분만 대기실 가장 구석 침상에 자리를 잡았다.


13:00 촉진제 투여

진통은 전혀 없었고 머릿속엔 '밥을 먹고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오늘 밤, 어쩌면 내일까지도 진통을 할 수 있다는데 밥도 안 먹고 버틸 수 있을까. 평소 밥심으로 버티던 사람이라 밥 걱정이 가득가득. 하지만 촉진제를 맞기 시작한 이상 밥은 먹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남편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먹고 오라며 내보냈다. 엄마와 통화를 하고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에게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을 하며 아직 평정심을 유지한 채 상황을 직면하고 있었다.


13:30 약한 진통 시작

남편이 밥 먹으러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짝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진통이구나. 싸르르 아팠다가 괜찮아졌다가, 다시 아팠다가 괜찮아졌다가의 반복. 진통을 열몇 시간씩 겪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시점이었다. 이런 진통이 수 시간 동안 반복된다는 의미였구나. 너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의 대비를 시작했다.


이후 진통 간격이 차츰 짧아지는 게 느껴졌고 배로 느껴지던 진통이 점차 허리로 내려갔다. 간호사선생님이 수시로 내진을 하며 자궁문이 어느 정도 열렸는지 파악했다. 내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진통을 겪고 있으니 내진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이후 진통간격이 더 빨라졌고 그때마다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며 남편 손을 힘주어 쥐면서 견뎠다. 남편은 허리를 손으로 받쳐주며 어쩔 줄을 몰라했고 안절부절못하며 '그냥 제왕 할까? 수술하자고 할까?'라는 말을 계속 걸어왔다. 대답할 정신은 없었는데, 속으로는 아직 좀 더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강해지는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간호사에게 달려가 지금 수술로 바꿀 수도 있냐고 물어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는 남편의 다급함에 와서 내 상태를 보더니 자궁문도 순조롭게 열리고 있고 자궁벽도 얇아지고 있다며 시큰둥하게 돌아갔다. 이 정도 진통은 오롯이 견뎌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며 버텼다.


하지만 점차 버틸 수 없는 진통이 찾아왔고 '아 그냥 수술할걸'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촉진제를 맞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라면, 오늘 밤, 내일 아침까지 진통을 참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머릿속을 점령해 갔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몸은 구부러져갔고 남편은 다시 또 안절부절못하며 간호사에게 무통주사를 요청했다. 간호사는 내진을 하더니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며 무통준비를 시작했다. 이어 무통주사를 놓으려는 순간 강한 진통이 찾아와 입 밖으로 다시 비명이 터졌다. 주사를 놓으려는 의사와 간호사가 가만히 있어야 한다며 소리를 쳤고, 나는 나대로 너무 아프다고 가만히 있는 게 불가능하다고 악에 받친 소리를 쳐대며 몸부림쳤다.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괴로운 순간이었다. 다행히 잠시 진통이 약해진 틈을 타 무사히 무통을 맞을 수 있었다.


무통천국, 까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간호사가 알려준 호흡법 - 그전까지는 복식호흡으로 길게 했는데, 이제는 들이마시고 - 흡! 멈추었다가 - 뱉어내는 방식 - 으로 호흡하다 보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갔다. 여전히 진통은 힘들었지만 무통 맞기 직전의 그 끊어지는 듯한 허리통증에 비하면 이 정도는 견딜만했다.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남편에게 '이런 상황에서도 핸드폰을 본다고?' 한소리를 뱉어낼 만큼 정신이 돌아왔다. 같이 긴장하던 남편도 이제 좀 살만한가 보냐며 웃었다. 중간에 올라온 의사는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는 말을 했다. 과거에는 어떻게 무통 없이 아기를 낳았지, 감히 상상할 수 없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무통 덕분에 분만 중에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다. 출산 중에 만난 오아시스랄까.


다시 진통이 거세졌고 진통의 위치가 허리에서 엉덩이 쪽으로 내려갔다. 엉덩이 아래,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가 주기적으로 아파왔고 호흡을 하며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진통을 견뎌갔다. 간호사는 내진을 반복하며 속도가 빠르다, 거의 열려간다고 했고, 나중엔 애기 머리가 보인다며 이마까지 보여야 분만실로 이동하니 진통이 올 때 힘을 주어 아기를 밀어내라고 하셨다. 하지만 막상 진통이 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마 힘을 더 줄 수가 없었다. 힘을 주면 아이가 밀릴 걸 알았지만 그럼 지금의 견딜 수 있는 진통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을 알아서 본능적으로 힘주기를 살살 피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심리는 얼마못가 간호사선생님에게 간파당해 버렸다. 무통효과로 산모가 힘을 주지 않는다며 촉진제를 다시 투입했는데, 촉진제가 재투입되기 무섭게 진통은 이전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비명을 질렀고 비명소리를 듣고 다시 찾아온 그 간호사는 '그렇지, 아기 낳으려면 진통을 해야지'라고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 무심한 말투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촉진제 치우고 다시 무통 내놓으라는 머릿속 외침이 비명소리로 바뀌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고 그 와중에 또 내진이 있었고 십 분 뒤에 분만실로 이동한다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면서 처음 겪는 고통. 허리가 부서질 것 같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휠체어에 앉혀졌고 머리를 떨군 채 분만실로 이동되었다. 밝은 조명들이 켜졌고 간호사들의 손에 이끌려 분만실 의자에 눕혀졌다. 의사가 있었고 '허리가 너무 아파요'라고 소리 지르는 내가 있었다. 괴로움에 계속 소리치자 의사가 소리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힘줘라, 애기 금방 나올 거 같다는 말에 온 힘을 주었고 그 과정에서 윗니와 아랫니가 마주 부딪히며 으드드드드드, 하는 괴상한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애기 머리가 나왔다, 어깨가 나와야 되니 한 번 더 힘을 주라는 말에 또 한 번 윗니와 아랫니를 긁으며 으드드득하는 소리를 내었고 그렇고 두어 차례 더 힘을 주었고 호흡이 끊기며 눈을 감았고 '엄마 애기봐요!!!!!'라는 다급한 외침에 눈을 다시 떴고 시야에 빨갛고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내 몸에서 이제 막 나온 애기는.... 예, 예쁘잖아..!


후처치가 이어지는 중에 아기를 한 번 더 보여주었는데, 아기는 한쪽 눈을 살짝 뜬 채 카랑카랑 울고 있었고, 살짝 떠진 그 한쪽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아기와 첫 눈 맞춤,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배에서 나온 낯선 생명체와의 눈 맞춤. 나를 쳐다보며 카랑카랑 울어대던 그 시뻘건 존재, 아직 축축하게 젖어있던 생명체. 물론 아기는 내가 보이지 않았겠지만, 눈 맞춤은 분명했다. 그때의 낯설고 오묘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특별한 하루들이 있었고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감히 오늘 하루와 비견할 수는 없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오늘 이 하루만큼 특별한 하루는 평생에 걸쳐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날, 초밥이가 태어난 날, 내 생애에서 가장 특별한 하루, 바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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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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