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차이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의 가장 흔한 비유가 고통의 후불제냐 선불제냐이다. 자연분만 경험자로서 자연분만이 후불제라는 비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
금요일 오후 5시 16분 출산
1인실이 없어 6인실로 이송되었고 후처치한 부분이 너무 아파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두 시간이 채 안되어 식사가 나왔고 자연분만의 이점을 누려야지, 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음식을 삼켰으나 이내 다 토해버렸다. 자연분만은 바로 밥 먹을 수 있고 금방 회복되어 걸어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술한 것과 다를 바 없이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자세도 맘대로 바꾸지 못한 채 다음날 아침까지 산 송장처럼 꼬박 누워있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물은 마실 수 있다는 것. 누워서 남편이 꽂아준 빨대에 의지에 물과 이온음료를 마시며 힘겨운 밤을 버텼다.
앞 침대의 부부는 눈치 없이 스피커폰 통화를 했고, 비어있던 옆자리 마저 사람이 들어와 그냥도 비좁은 6인실이 만실이 되었다. 병실은 더웠고 새벽에도 사람들이 계속 드나들었으며 남편들의 코 고는 소리가 밤새 우렁찼다. 출산으로 극도로 피곤한 그날 밤, 단 한순간도 잠들지 못한 채 꼬박 밤을 새 버렸다. 그 여파는 다음날로 이어졌고, 오전 내내 식은땀과 어지럼증으로 아무것도 못한 채 누워만 있었다.
이후 조리원에서도 일주일가량 고통이 지속되었다. 앉아있는 것이 힘들다 보니 조리원의 교육들은 언감생심이었고 걸을 때마다 골반과 허리를 부여잡아야 했다. 일주일쯤 지나니 걷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는데, 이쯤 되니 제왕절개 산모들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잘 걷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제왕절개를 안 해봤으니 함부로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자연분만은 다음날 밥 먹고 멀쩡히 걸어 다닌다'는 너무 과장된 속설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단, 나는 고령의 산모이다...)
내가 느낀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은 고통의 선불제 후불제가 아니다. 이건 가치관의 차이이다.
38주가 되어 뒤늦게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매일매일 동네 산책을 하며 뱃속의 아기가 언제 세상 밖으로 나올지 궁금했다. 시어머님은 아기가 선택해서 나오는 거지,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이 불확실한 기다림이 두려우면서도 설렜다. 초밥이를 어떤 날, 어떤 요일, 어떤 시간에 만나게 될까. 초밥이는 언제를 선택하게 될까. 매일 같은 동네를 걸으면서 초밥이에게 묻곤 했다. 언제 나올 거니?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불확실성이 싫을 것이다. 언제 어느 시간에 갑작스레 닥치게 될 그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날짜를 잡고 그에 맞추어 아기를 맞을 몸과 마음과 환경의 준비를 하고 보다 안정된 상태로 아기를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면, 자연분만보다는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 전날, 점심때 평소보다 무리해서 산책을 했고 밤 10시에 차로 5분 거리 아파트에 아기침대를 당근 하러 갔다. 그런데 웬걸, 침대가 생각보다 커서 남편의 차에 들어가질 않았다. 남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침대를 분해할 것인가 차라리 집까지 끌고 갈 것인가 구매자에게 장비를 빌릴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남편은 차를 끌고 집에 가서 육각렌치를 챙겨 와 침대 양 끝 일부를 떼어냈고 만삭의 임산부인 나도 힘을 보태어 트렁크와 뒷좌석의 짐들을 싹 다 옮기고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겨우 차에 실을 수 있었다. 집에 오니 무려 열두 시.
둘 다 지쳐서 그 새벽에 초코우유와 딸기우유, 초코 듬뿍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우리 너무 무리했다고 웃었고, 그 와중에 남편은 내 배를 보고 '오늘이 제일 많이 나왔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불룩한 배를 바라보며 '초밥이 너 이제 나와야 돼, 나올 때가 되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 그다음 날 초밥이가 나와버렸다.
초밥이가 내 말을 듣고 나온 건 아니겠지만, 이런 깜찍한 우연이 기쁘고 재밌다. 초밥이 탄생에 의도치 않게 개연성이 생긴 것 같다. 자연분만에 대한 불확실한 두려움은, 수차례 상상했지만 완벽하게 생경한 출산의 기쁨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