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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Sep 08. 2020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누구일까요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있을수록 안정감을 찾는다. 너무 적은 생각은 오히려 시끄럽다. 각자의 그릇의 크기는 상이하며 고정되어있다.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내 삶의 태도이자 가치관이다.


  속이 타들어간다. "나중에 너 같은 아들 꼭 낳아라. 알겠어?"라는 단골 멘트를 날려준다.

1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새는 사춘기가 더 심해진 듯하다. 무심해진 눈길은 눈치를 보게 만들고, 거칠어진 행동은 화를 부른다. 이 또한 언젠간 지나가겠거니. 체념을 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닳아있다.


  그래도 가끔은 선물을 사 온다. 잘 어울릴 것 같은 펜이라면서. 지쳐 보인다며 빨래를 해주기도 한다. 그럴 땐 또 예쁘다. 내 안에 같은 생각들이 여러 개 존재한다. 모든 건 너로 인한 것들이다. 왜 아들들은 같은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만드는 건지. 컴퓨터펜 3개, 네임펜 2개, 제도샤프 2개. 퍽 이런 것들이다.

친구 이야길 들어보니, 딸들은 또 딸들 나름대로란다. 생각하지도 못한 별 생각들을 다 하게 만든다고. 지워지는 형광펜, 흔들면 나오는 샤프. 옥수수모양 지우개같은 것들. "그래도 단순한 아들들이 낫지~ 딸들은 너무 복잡해." 순간의 위로란 이런 거겠지.


  나의 생각들이 모두 너의 것이라는 건 억울하지 않다. 그게 나의 임무이자 책임감이다. 다만 그 생각들이 드나드는 게 모두 너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게 문제다. 마음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지익-. 

  네가 내 곁에 있을 때엔 마음이 열린다. 들여다봐주기도 하고, 요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지익-. 

  네가 멀어졌다. 마음이 닫혔다. 다 쓴 물티슈를 책상에 무심히 던지듯 돌아선다. "이젠 내 말이 귓등으로 들리지?" 애석한 뒷모습에 쓴소리를 내뱉는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해결될 사소한 것들. 그런 것들이 쌓여 내 새카만 속을 만들었다. 너는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만다. 여전히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수성펜 쓰지 마. 잉크가 번져서 다 묻잖아.'

'가방에 던지지 좀 마. 기분 나쁘잖아.'

'지우개 쓰고 나면 지우개 가루는 털고 넣으란 말이야. 지우개똥도 똥이라고!'

'샤프심 뚜껑은 딱 소리 날 때까지 닫아. 샤프심 쏟아지면 다 부러지고 아깝잖아.'

'너 때문에 내 속이 아주 새카매.'



"그래, 내 이름은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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