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妙藥)

by 아천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Richard Wagner)가 만든 <트리스탄(Tristan)과 이졸데(Isolde)>라는 오페라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사랑하지만 트리스탄의 숙부이자 콘월의 왕인 마크(Mark)의 명령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수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졸데는 트리스탄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안타까워한 하녀가 독약대신 「사랑의 묘약」을 몰래 주는 바람에 이들은 오히려 더욱 열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왕은 격노하고, 왕의 신하는 트리스탄을 칼로 찌르게 됩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열정적이지만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도니제티(G. Donizetti)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였습니다. 이 오페라에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랑의 묘약의 이름은 이졸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사랑의 묘약>에서 부르는 대표적인 아리아입니다.


사랑은 지역과 시대(동서고금)를 불문하고, 시인, 소설가, 작곡가들의 단골 주제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사랑의 마력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소망하며 사랑 속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은 본능과 더불어 인간의 근원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신다(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라고 했습니다. 신과 인간이 사랑으로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일반적으로 열정적인 사랑(eros), 유희적인 사랑(ludus), 동료적인 사랑(storge), 논리적인 사랑(pragma), 소유적인 사랑(mania), 이타적인 사랑(agape)의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열정적인 사랑(eros 에로스)은 첫눈에 반하거나 연인의 신체적인 매력에 끌리면서 사랑이 시작되는 유형입니다.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연인들은 자기를 빨리 개방하고 쉽게 감정적으로 동화하고 신체 접촉도 빠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이 객관적인 사실과 상관없이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유희적인 사랑(ludus 루두스)은 여러 명의 연인을 두고 그 가운데서 사랑의 관계를 즐기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연인으로부터 얻어 내는 자신의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사랑의 감정이 깊지 않고 쉽게 연인을 바꿉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범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른이 되어서 종종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동료적인 사랑(storge 스토르게)은 처음에는 형제자매나 놀이 친구 같은 관계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르익는 사랑의 감정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스토르게이(storgay)에서 비롯된 사랑의 유형입니다. 서서히 이루어지는 자기 개방으로부터 생기는 편안한 친밀감을 서로에게 느끼는 관계로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오랜 우정에서 생긴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보통 대가족이나 서로 격려해 주는 분위기의 가족 문화 속에서 자랐거나,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공동체 안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정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랑의 분류에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논리적인 사랑(pragma 프라그마)을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상대에게 원하는 실용적인 자질의 목록을 다소 의식적으로 작성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구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잘 어울리는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집니다. 어울리는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논리적이고 사려 깊으며 흥분보다는 만족을 추구합니다. 이들이 연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만족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도 연인에게서 그만큼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논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노력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소유적인 사랑(mania 마니아)을 하는 사람들은 질투와 소유욕이 강하고 연인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혀 있고 연인에게 의존적입니다. 사랑의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항상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과 연인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고 회상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외로워하며 자신의 일에 쉽게 만족하지 않습니다. 극도의 질투심을 보이고 상대방에게 더 많은 애정을 요구하는 유형의 사랑입니다.

이타적인 사랑(agape 아가페)은 무조건적으로 배려하고 제공하는 타인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를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 플라톤 사랑(platonic love)라는 말도 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Platon, Plato)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는데, 이로부터 금욕적이면서 정신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데에 플라톤의 이름을 차용하여 플라토닉 러브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열정적인 사랑(eros)에 대비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형의 사랑이든 사랑에 빠지는 일은 아름다운 현상입니다. 한 번도 깊은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라고 묻습니다.


대부분 사랑을 하는 것보다는 받기를 원합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희생의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고통은 이타적인 사랑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으며, 이타적인 사랑은 보통 두터운 신앙에 근거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이타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지만, 더러는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인간은 인내심을 제한적으로 갖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의 묘약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열정적인 사랑이든, 유희적인 사랑이든, 동료적인 사랑이든, 논리적인 사랑이든, 소유적인 사랑이든, 이타적인 사랑이든 어느 한 가지라도 깊은 사랑에 빠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랑의 극한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 신의 궁극적 가르침을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선교자 바울은 고린도 서신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놋쇠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고 온갖 신비한 것과 모든 지식을 이해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나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의미 있는 일의 본질은 사랑이며, 사랑의 본령(本領)은 이타적 사랑(아가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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