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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14. 2021

09) 바로잡으려 멈췄는데, 또 틀린 길을 가려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퇴사가 아닌 휴직을 선택했다. 세속적인 결정이지만, 나는 아직도 퇴사의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당시당장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퇴사 말고 다른 길은 생각도 못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매일 소리만 지르던 담당 임원과의 퇴사 면담이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임원은 지금까지 들어본  없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25년을 여기에 있으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 정말 많이 봤다. 나도 아팠었고, 지금도 여기 병원 다니면서 일하는 사람 많아.'


첫마디에 불쑥 반감이 들었다. ' 어쩌라는 건가, 다들 그러고 사니까 나도 버텨보라는 소린가?'싶었다.


'나야 뭐 올라온 사직원에 결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너보다는 여기 오래 있었으니까... 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또다시 설교의 시작인 건가' 싶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지금 당장은 다 힘들어서 마냥 내려놓고 싶겠지, 그 맘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야. 당장 뛰쳐나가서 해보고 싶은 일이 많겠지. 그런데, 정말 그게 최선일까?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너의 노력으로 이룬 성공일 수 있어. 너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거 안다. 그러면.... 가끔은 좀 이기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아.'


이번에는 호기심에 귀가 열렸다. '임원이라 그런가... 말을 잘하네..' 생각했다.


'좀 아깝잖아. 그리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사람이 살면서 몸이고 마음이고 아플 수도 있지. 그런데.... 아프면 퇴사하는 게 아니라 치료를 받는 게 먼저 아닌가? 민폐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너도 알다시피 조직은 너나 나 하나쯤 없어도 잘 돌아가니까. 아예 내려놓고 다니면서 치료받거나 아니면 좀 쉬는 건 어때?'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맞는 말이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계속 다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순간도 견디기 힘들어서 퇴사를 결심했던 것이니까. 하지만 쉬는  다른 이야기다. 회사에는 병가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이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병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수군거림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운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었다. 혹시 모를 다른 사람의 낙인? 그건 아무 상관없었다. 생각보다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순간 가십거리가 되는  얼마든지 참을  있었다. 그래서 방법을 조금 바꿨다. 퇴사하기 전에 회사의 제도 안에서 모든 방법을 써보고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휴직을 생각 못했지?' 하며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정말 퇴사 외에 다른 건 보이지도 않았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놀랍게도, 가끔 내 주변에서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상담이나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참지 못해 다 내려놓고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그 정도로 고통스럽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회사에 있는 제도는 다 써보라고 항상 권장한다.  




바로 다음 정신의학과 진료 날에, 휴직 결정을 이야기하고 소견서를 받았다. 병가를 위해 의사의 소견서로  병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리더에게 보고했다. 리더는  소견서를 보다가 피식하며 웃었다. 그는 당황했는지 급히 변명했다.


'아 미안, 이걸 보고 웃은 건 아니야. 이렇게 까지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할 필요는 없었는데....'


아직도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사람을 용서할  없다. 분명 나는   리더,   사람에게만 보고했다. 하지만  사람은 2 상사인 담당 임원 외에 여기저기 나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나도 딱히  상태에 대해 숨기지는 않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어느새 모두 알게   우리  리더의 '' 컸다. 언젠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리라는 다짐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있다.


나는 빠르게 휴직 절차를 밝았다. 이제 2주만 버티면 드디어 잠시 멈출  있었다.   년간 느껴본  없는 설렘을 오래간만에 느꼈다. 그리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일단 떠나는 것이었다. 5년간 일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고, 좋아하는   놓고   적도 없다. 그래서 무작정 부산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출발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멈추기로 결정은 했어도 상황은 달리진  없이  상태 그대로였다. 사무실에 있는 내내 답답했고, 스스로 어떠한 동기도 찾지 못한  무기력했다. 가슴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조여왔고, 불안함은 매일매일 나를 괴롭혔다. 여전히 상담일자와 진료 날만 기다리고 있었고, 휴직 시작일까지 남은  주가  년처럼 느껴졌다.  


휴직은 3개월. 나는 그 짧은 기간을 인생을 바꿀 만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겠노라 결심했다. 이 지옥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3개월 동안 그게 가능한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그래야만 했다.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간절함만 앞섰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을 내 마음을 돌보겠노라 다짐하며 눈물 흘리던 내 모습은 잊어버린 듯했다. 나는 다시 조급해졌고, 또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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