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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26. 2021

나의 '선택'이 나의 '지금'을 만들었다.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
  by Robert Frost

낙엽 빛 가득한 숲 속에 두 갈림길이 있었다.
몸은 하나라 두 길 모두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한참을 서서 굽어지는 한 길을 최대한 멀리까지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그에 못지않게, 아니 더 아름답다고 느낀 다른 길로 걸어 들어갔다.
풀이 무성하고 사람의 흔적이 없었기에.
하지만 내가 지나감으로 그 길도 마찬가지가 되겠지.

그날 아침 두 길 모두 사람 다닌 흔적 하나 없이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아, 나는 첫 번째 길을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이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내가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말하겠지.
숲 속에 두 갈림길이 있었는데, 나는 그저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다.
바로 그것이, 이 모든 변화를 만들었다고.


과거에는 가끔씩, 그리고 최근엔 꽤나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혹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가장 좋아하는 영시인 'The Road Not Taken'은 내게 완벽하게 납득할 만한 답을 주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을 해본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왜 여기 누워 있을까?'


침대에 눕기 전까지, 하루 동안 마주쳤던 모든 갈림길에서의 내 선택이 나를 이곳에 있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뜰까 말까, 출근을 할까 말까, 점심을 먹을까 말까, 쉬었다 할까 그냥 할까, 퇴근을 할까 야근을 할까, 밥을 먹을까 말까, 빨래를 할까 말까, 글을 쓸까 말까, 침대에 누울까 말까 등등.


오늘 하루 내가 만난 수 백 번의 갈림길에서, 난 매 번 '좀 더 아름답다고 느낀' 한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또 다른 갈림길로 나를 인도했고, 그 갈림길에서의 내 선택들이 '바로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이유인 것이다.


어떤 갈림길이냐에 따라 선택의 시간이 달라진다. 너무 졸린 내 앞에 나타난 '잘까 말까'의 갈림길에서 '잠'의 길을 선택하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할까 말까'의 갈림길에선 '말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가능한 최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려본다. 그 후 가장 그럴듯한 한 가지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갈림길의 숫자가 달라진다. '쉬었다 할까 그냥 할까'의 갈림길에서 '그냥 하자'의 길로 간 나는 '퇴근을 할까 야근을 할까'의 갈림길을 만날 수 있지만, '쉬었다 하자'의 길을 선택한 나는 '야근을 해야만 하는 길'만을 만날 수도 있다. 후회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상관없다. 그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에 영향을 준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 이러한 모습의 삶을 살고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매 갈림길의 순간에 내가 내린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학생 때 어느 순간에 '공부를 더 할까 말까'에서 선택한 길. 저 친구에게 '말을 걸까 말까'에서 선택한 길. '무엇을 전공할까'에서 선택한 길. '어떤 회사를 들어갈까'에서 선택한 길. '어떤 하루를 보낼까'에서 선택한 길.


뒤를 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한 갈래의 길만 보이기에 마치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온 듯 느껴지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 백 수 천 개의 갈림길에서 '좀 더 그럴듯한' 길을 선택하며 나의 하루, 일 년, 평생을 만들어왔다. 과거에는 일생의 '어떤 한순간의 특정한 선택'이 내 삶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어떤 한순간'을 위해 그전부터 지나왔던 수많은 갈림길, 그리고 그때마다의 내 선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 우리 부모님을 만난 것, 어린 시절을 나의 동네에서 보낸 것, 어떤 초등학교를 들어간 것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서도 갈림길을 만났고 또 선택을 했고 나의 삶을 만들어왔다. 억울한 마음에 남 탓을 하고 세상을 탓해도, 어느 순간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갈림길이 있었다. 그 선택의 끝에 지금의 내가 있을 뿐.   


어떠한 선택이 후회스럽다고 하여 그 순간의 갈림길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뒤를 돌아서 왔던 길로 곧장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느덧 내 앞에 또다시 펼쳐질 많은 갈림길에서,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하나씩 선택해 앞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내가 한두 개의 갈림길에서 잘못 선택을 했다고 하여, 지나온 모든 길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선택을 하면 그만이고, 다만 가끔 많은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좌절하여, 무기력하게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앞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잠시 그곳에 주저앉아 나를 다독이면 그만이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가지만, 잠깐 먼저 가라고 앞으로 보내버리면 뭐 어떤가.


만약 어떤 순간을 후회하고 어떤 선택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저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그리고 몇 번의 유혹을 더 참아내야겠지만, 그렇다고 못할 건 아니지 않겠느냐고. 나도 여태 주저앉아있다가 이제야 일어났다고. 괜찮다면, 서로의 '어느 한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노력해보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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