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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Lee Oct 31. 2020

어둠속에서_1

1.


‘지금여기로 올 수 있어요?’


밤 열 시 반이 넘어갈 때쯤 그녀로부터 꽤 오랜만에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우리는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략 2주 전쯤이었던가. 핸드폰으로 스트리밍 영상을 보는 중 우연히 화면 속 광고의 팝업을 잘못 눌러 연결된 채팅 앱을 다운로드하였다. 랜덤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우리는 첫 대화를 시작했지만, 서로의 하루 안부를 묻는 기본적인 대화 몇 마디 만을 나눈 채 대화는 끊겨버렸다. 내 쪽에서 보냈던 "어디 사시나요?"라는 메시지가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몇몇 사람과 대화를 좀 나누었지만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더 이상 채팅 앱에 접속하지 않았다.


-


‘지금 올 수 있어요?’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요? 그것도 이 시간에?’

‘간단히 맥주 한잔 할래요? 사실 저는 이미 좀 마셨지만요.’

‘무슨 일 있었나요?’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 친구들이랑 함께 있는데.. 올 거예요 말 거예요.’


뜬금없이 만나자는 제안도 황당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더 부담이 되었다.


‘친구분들이 있어서 가기가 좀 그렇네요. 그쪽도 잘 모르는데, 친구들까지 같이 본다는 것은 더 부담스럽네요’

‘그럼 따로 만나요. 제가 지금 나갈게요. 어디서 보는 게 편할까요?’


이런 상황은 난생처음이었다. 약간의 의심과 동시에 호기심도 생겼다. '대체 뭐하는 여자일까?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 아님 원래 스타일이 이런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지만 왠지 거절하기는 싫고 일단은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전정신, 뭔 그런 게 생겼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맥주 한잔 해요. 그리고 저는 이미 좀 취해있어서.. 제가 불리한 건 알고 있죠?’


-

택시에서 내려 메세지로 미리 정해놓은 작은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5분 정도 먼저 도착해 테이블을 잡아놓은 그녀가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했다. 두터운 코트와 목도리로 몸을 꼭꼭 싸맸지만 꽤 마른 체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하얀 피부와 진한 쌍꺼풀의 큰 눈 그리고 약간 각이 진 턱이 인상적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맥주 한잔 하시겠어요?"

"그러죠. 저는 이미 많이 마셨으니, 딱 한잔만 더 할게요. 그 이상 마시면 필름이 끊길 것 같군요."


많이 취했다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녀는 꽤 멀쩡해 보였다. 무엇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은 듯했다. 평범한 직장인 같아 보이는 모습과 코트 소매 밖으로 보이는 가녀린 팔목에 비해 목소리에는 제법 힘이 실려 있었다. 다행히도 안전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나보다 2살 연상의 40대 직장인이었다. 작년까지 여성잡지의 기자생활을 좀 하다가 지금은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패션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일이 끝나면 대부분 술 한잔 하고 귀가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면서 일의 특성상 낯선 누군가와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본인한테는 자연스럽고 불편하지 않은 일이라 했다. 딱 맥주 한잔만 마시자던 우리는 어느새 한잔 두잔 마시며 테이블 위를 빈잔으로 채웠다. 그녀의 주량은 이미 넘어섰지만 주정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한마디 한마디 정확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 그만 나갈까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가 살짝 웃으며 잠시 호흡하더니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텅빈 호프집에서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포개며 순간의 정적안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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