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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Lee Oct 26. 2020

나무가 되어 _ 1

1.


 그 해의 첫눈이 내리던 겨울 작고 예쁜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매일 같이 찾아와 조그맣고 하얀 손으로 나의 큰 몸을 두르며 올려다보는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내리는 눈보다도 맑고 깊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곁에 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과거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팔 벌려 나를 안을 때면 반의 반도 두르지 못했던 그녀가 어느새 내 몸 반 이상 안을 수 있을 만큼 훌쩍 커버렸다. 성장해 가는 그녀를 보는 것이 기쁨 이었지만 나를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이들이 그랬던것 처럼 그녀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미소와 웃음소리는 점차 줄어들었으며 표정없는 얼굴과 함께 그저 아무 말 없이 머물다 가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매일 같이 찾아오던 발걸음 또한 어느샌가 뜸해졌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단지 그 날 그녀의 표정은 다른 날에 비해 조금 더 슬퍼 보였다. 말없이 앉아있던 그녀는 나를 안고는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고, 흐느낌은 이내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그칠만하면 울고 그칠만하면 울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 동안에도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에 있어주었다.


"그 남자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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