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설책을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쏟아져 나오는 자기 계발서 중 하나를 잡아 읽기도 버거운데 소설책을 읽는다는 건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치 내지는 낭비정도로 타부 해버렸다. 시간을 낭비하는 일종의 죄의식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적어도 박완서 님의 장편 소설 "그 남자의 집"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바다 일상은 고되지만 시간이 많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지만, 일 외 시간에는 쉴 수 있다. 멀티태스킹이 안된다고 구박받는 나에게는 오히려 심플한 일상은 편안했다.
하루 일을 마치면 식당에서 밥을 두 공기 비우고, 남루한 짐에 가서 운동을 하고 숙소로 들어온다. 그때부터는 자유다. 소셜미디어에서 페친들의 일상을 훔쳐보려니 숨이 넘어간다. 동영상을 아애 꿈도 꾸지 못하는 인터넷 속도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1등 항해사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내가 좀 빌려 달라니 본인이 개봉하지도 않은 책들을 넘겨줬다. 새책은 내가 먼저 펴서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를 맡고 싶은 마음은 일반일 텐데 선 듯 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중에 한 책이 박완서 님의 "그 남자네 집" 장편소설이었다.
새벽에 있을 툴박스 미팅 준비도 잊은 채 어젯밤 12시를 넘겨 책을 다 읽었다.
아...한마디로 정말 아름다운 언어의 결정체였다. 첫사랑의 이야기도 가슴 뛰고, 이야기를 표현하는 문장, 단어 하나하나가 구슬을 엮어 놓은 것 같이 빛이 났다 (이 책에서 인용한 표현). 내가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접해보지도 못한 단어들이었지만,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이해가 됐고, 그 단어가 아니고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어찌 그런 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 있는지 웃음 짓게 했다.
그 남자네 집을 읽으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살아보지 못했던 한국전쟁 전후 시대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해보고 싶을, 첫사랑에 대한 공감이었다.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과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걸작이었다.
장편소설을 왜 읽나 싶었었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 님은 소설을 읽는 이유를 명확히 짚어주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다.
소설을 읽음으로 등장인물의 삶에 빠져듦으로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힘을 키워준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마을을 깊이 헤아려보는 것일께다.
치열한 경쟁사회는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잘 배우지 못 했다.
배에서 각자의 맡은 일이 모두 다르다. 많은 다른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이야 말로 하나의 목적지로 항해하는데 필요한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