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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Jan 15. 2021

서울 둘레길 1코스


서울 둘레길은 8개 코스다. 1코스는 도봉산역을 출발하여 화랑대역까지다. 창포원에 둘레길 완주인증센터도 있다.

여름 어느 날 친구와 다음날 둘레길 1코스를 걷기로 하였는데 일기예보는 오전에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있다. 친구와 아침 6시에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가 오지 않는다. 친구에게 카톡으로 연락하고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경기북부 지역으로 달리는 전철은 많은 산객이 있어야 하나 더위를 피해 모두가 어디로 갔는지 넉넉하다. 7명분 자리에 혼자다. 전철은 부지런히 도봉산역에 도착하였다. 친구를 찾으니 인증센터 앞이라고 한다.


창포원을 미리 답습한 친구가 그래도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지식백과사전에 창포원을 확인하니 서울창포원은 붓꽃원, 약용식물원, 습지원 등 12개의 테마로 구분 조성됐고 붓꽃원에는 130종의 다양한 붓꽃 30만 본을 약 15,000㎡의 면적에 식재해 종류별로 붓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노랑꽃창포, 부채붓꽃, 타래붓꽃, 범부채 등 꽃봉오리가 '붓' 모양을 한 붓꽃류 130여 종 30만 본이 1만 5천㎡에 걸쳐 식재돼 있어 '창포원'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서울 둘레길 157km이다. 나는 이 길을 걸어보았다
8개 코스다. 가장 힘든 코스는 8코스이다. 1코스는 시작이다.


하지만 친구는 다 걷지 못하였다. 1코스를 시작하면서 곳곳의 야생화를 그림으로 넣고 이름을 읊조린다.
달맞이꽃 죽단화 나팔꽃  다양한다. 8월에 피는 꽃이 궁금하기도 하다.

달맞이꽃은 남아메리카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며 물가·길가·빈터에서 자라며 굵고 곧은 뿌리에서 1개 또는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곧게 서며 높이가 50∼90cm이고 전체에 짧은 털이 나며 잎은 어긋나고 줄 모양의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얕은 톱니가 있다고 한다. 해방시기에 들어왔다고 하여 해방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꽃말은 ‘기다림’이다. 전국 각지에 분포한다.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 발끝에 아무렇게나 차이고 밟히다. 이작은 풀에 점처럼 작은 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는다니 정말 대견하다. 꽃이 있을 것이라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꽃말은 나를 깔고 앉지 말아요. 꽃말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단 한해밖에 살지 못한다는데 밟거나 깔고 앉으면 얼마나 서럽겠야.

야생화는 우리에게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야생화 이름을 보면 우리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야생화 이름에는 그 모양대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름이 듣기에는 거북하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온 외국의 꽃 이름도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팔꽃만 보아도 나팔 모양이다.


흐트러지게 핀 야생화를 옆에 끼고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을 걷는다. 의정부 장암동 쪽 아파트의 현수막은 흥미롭기도 하고 지역이기주의를 엿볼 수 있다. 서울 인근에 아파트를 지은 것은 업체들의 상술이고 여기에 입주한 것은 서울보다도 싸면서 서울의 편리성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는데 입주하고 보니 이웃한 서울보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이제는 서울로 행정구역을 변경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화장실 갈 때와 갔다 온 다름이 여기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수락 육교를 지나고 수락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의 징검다리 위는 가을의 바람을 만끽하였다.


수락산 정상까지는 3.x km다. 오늘의 둘레길은 수락산 자락과 불암산 자락이다. 수락산에 처음들 어선 등산로에서 본 거리 표지이다. 마지막까지 3.x km다. 컴퍼스를 이용하여 연필이 된 것이다.

동그라미 비슷하게 그리다 보니 오르내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20km를 걸어서 녹초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알 것 같다. 3일 전 성인봉을 등반한 친구를 녹초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설악산의 공룡능선이 어려운 이유가 오르내림이 심하기 때문이다. 옛날 생각이 든다. 한남금북정맥을 하면서 300m 정도를 6번인가 오르내리고 녹초가 된 기억이 새롭다. 톱니바퀴형 등산이 제일 어렵다.

30도 각도의 바위산을 올라본다. 등산화를 믿고 올라본다. 등산화 때문에 문제가 없다. 운동화는 어림도 없다. 돌산이면서 화강암 지역을 재미나게 전망해본다. 저 바위를 절단하여 석재로 사용하였는데 이제는 사용하지 않고 타지에서 채취한다고 한다. 채석장은 곳곳에서 문제를 유발한다. 채석장을 사용한 후 방치하여 폐허가 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그래도 관리가 잘 된 곳이다.
채석장이 있으면서 곳곳에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여름 한낮의 더위를 계곡에서 보내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계곡에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색의 바위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수다의 사랑방을 이루고 있다. 평평한 바위에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근처에 약수터가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름도 재미있게 지었다.


우리들 나이에서 6,70대 여성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 논의를 해본다.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아쉽다. 나는 아주머니라고 해야 된다고 하고 친구는 별도로 명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산에 올라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아저씨들은 없다. 우리들도 곧 그들의 나이가 될 것인데 우리들도 건강을 챙겨야 할 것 같다. 옛적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에 70대 아저씨가 완주를 한 것을 보았다. 그분이 모친에게 감사를 하는 것이 나에게도 그러한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수락산 불암산은 돌산이다. 화강암이 많은 지역이다. 산 입구에서부터 바위가 참 많다. 이곳에는 채석장이 있었으며 이곳은 60년대와 70년대 개발시기에는 많은 돌들이 채석되어 서울의 어느 곳에 사용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채석장은 그래도 방치되지 않고 공원으로 변신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조망의 명소가 되어 있다.
어릴 적 동물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바위를 그렇게 부른 것처럼 이곳에도 배바위 고래바위 공룡바위 등이 어린이들이 부른 것이 지금은 공식 명칭화 되어 있다.

채석장에서 바위를 잘라낸 흔적을 볼 수 있고 이를 이용하여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채석장을 잘 정리한 것은 용마산 인공폭포라 할 수 있다. 용마산 채석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1997년 서울시에서 인공폭포를 조성하여 폐허가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의 ‘채석장’이 서울시 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어있다. 서울시는 정순왕후의 릉인 ‘사릉’ 조성 당시 석재를 채취했던 채석장인 강북구 수유동 구천계곡 일대에서 확인돼 국내 최초로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사릉 석물 채석장’은 그동안 정확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던 조선 왕릉 채석장의 소재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최초의 사례이다. 사릉은 단종의 왕후인 정순왕후의 릉이다.

바위의 무늬가 수락산의 전설을 엿볼 수 있었다. 수락산을 지키는 거인이 있었는데 거인은 어린이들과 산객들을 보호하였지만 개발하는 인간들이 채석장을 만드는 등 영역을 침범을 계속하여 자기의 표시를 남겨두고 떠났다고 한다. 화강암 산인 수락산 불암산에 화강암에 섞여있던 석회석 성분이 비에  녹으면서 나타난 문양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설화로 다시 태어났다. 거인의 손과 발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채석장을 지나면 바로 수락산 갈림길이다. 먼 거리를 돌아서 둘레길로 갈 것인지 고민에 싸였다. 누구나  고민일 것이다.

나는 도심을 통과하는 구간이 싫고 친구는 거리가 짧았으면 하였다. 하지만 논쟁 끝에 거리가 멀지만 더 걷기로 하였다. 사실 나는 이더 위에 도심을 걷는 것이 싫다. 숲을 걷는 것이 좋다. 부산에 가 있는 친구도 이 길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동행은 3일 전 성인봉을 등반하였고 태풍 때문에 일찍 나왔다,
등산을 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한다. 서로의 건강에 대하여 화제가 되었다. 나는 가슴통증에 이야기하면서 내가 지켜야 할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금주 금연 많이 걷기 그리고 카페인 줄이기다. 사실 앞에 있는 3개는 기본적으로 지키는 것으로 금주 금연을 하고 걷기도 많이 한다. 하지만 카페인을 줄이는 것은 싶지가 않다. 가슴통증이 이것에 유래하였다면 나는 오지 않아야 하는데 관계있다고 하면 더욱 문제다. 친구는 비문증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오는 눈의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비문증은 눈앞에 모기, 벌레, 먼지,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떠다니는 증상으로 일명 '날파리증'이라고 불리며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50년 이상 사용한 결과일 것이다. 아직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타날 것이다.


이동 과정에 보면 사찰이 많다. 그중에 학림사를 들르기로 하였다.
학림사에 도착하였다. 사찰에 특이한 것은 사천왕이 지키지 않고 문수보살이 지키고 있으며 원숭이가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마지막에 만세를 부른다.

친구가 해석하기를 잘못된 것을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보지 않으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학림사에서 어느 분의 49제를 치르고 있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유족의 뜻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500년 이상 우리 문화로 정착되면서 사찰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이것에 대하여 지식백과사전에 알아본 결과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 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절충된 것으로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齋)를 올려 죽은 이가 그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으로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부르며, 이 49일간을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生)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림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그분이 유명하니까 그렇게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문화콘텐츠 닷컴의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원효대사 관련 사찰은 신라 땅이었던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면서 중생교화와 구도행을 펼친 흔적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어 역사적인 근거와 유물 및 유적이 남아 있고, 사찰이 자리 잡은 산봉우리에 원효봉, 원효대라고 지금까지도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들 사찰 99곳이라고 한다.
계곡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우리도 이것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계곡은 시원한 물줄기가 우리를 유혹한다. 점심을 계곡 물에 발 담그고 먹었다. 등산하면서 하산하여 발을 시원한 물속에 피로를 회복한 기억은 있지만 점심을 먹은 사실은 없다. 부산에 있는 친구가 여름 산은 계곡이라고 하였다. 역시 그렇다. 수락산이 끝나기까지 3.x km는 계속되었다. 불암산에서 시작하여 수락산까지 등산할 때 만나 덕릉고개에 다다랐다. 이제 수락산 자락을 벗어나 불암산 자락에 들어선다. 수락산을 사진으로 담는다.


불암산이다.
철쭉동산에 이르렀다. 정자에서 멀리 있는 수락산을 한눈에 넣는다. 이곳은 짧은 코스와 긴 코스가 만나는 지점이다. 탁 트인 전망이다. 이곳에 둘레길 스탬프가 있다.

전망대를 만났다. 지금까지는 전망대라고 하여서 조망이 좋은 곳에 데크를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불암산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탑이다. 지나칠 수 없는 산객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잡아들인다. 하지만, 태양이 이글거리는 탑 위는 우리 말고 오르는 사람이 없다. 이곳을 보면 옛 기억이 새롭다. 상계역에 하차하여 불암산을 오를 때 이곳을 지나친 기억이 새롭다.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가면서 봉화대를 거치는 구간이다.


계곡에는 낚시의자를 계곡물에 담그고 밤을 담그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더위를 잊기 위한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돌산이지만 태풍을 따라온 비구름이 남기고 간 자취에 계곡물을 품어내고 있다.


수락산 불암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몇 번 만나는 약수터마다 음용 부적합인데 불암산에서 처음 적합 생수를 만났다. 물줄기가 시원하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검사 시에는 물이 없어서 검사를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불암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최불암 선생이다. 최불암 선생의 시비가 있다.
그 시비를 보면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에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운 세월 영욕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았습니다

   수천만 대를 거쳐 노원을 안고 지켜온
   그 웅지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곳도 암산이다. 암산이다 보니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곳곳에 있다. 너른 바위, 여근석, 남근석,  공룡바위, 연인 바위 등이다. 철쭉동산까지 이동하면 산 중턱을 타고 이동한다. 바위탐방 여행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근석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였으나 여근석은 설명이 상세하였고 옛시대에 남존여비가 심한 결과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여근석에는 사람들 접근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여근석의 설명을 보면 옛날에는 아이들의 접근하지 못하게 했으며 바위 둘레에 가시나무를 겹으로 심어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는 속설도 있다고 한다.
둘레길이 백사마을 갈림길까지 평탄하게 이어졌다. 백사마을(중계동 104번지)은 노원구 중계동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마지막 달동네이며 중계동 104번지에 위치하였으며 이곳을 거주하던 사람은 많으나 모두 다 이사하여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달동네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20층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다고 하니 아쉽기도 하다. 갈림길에 올라서는 오르막이 힘겹다. 바람도 없다. 마지막 남은 힘을 보탠다.


갈림길 정상이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산객들이 숨을 들이켠다. 우리도 숨을 들이켠다. 숨을 들이켜고 능선길에 들어선다. 왼쪽은 한국전력 연수원이고 오른쪽은 태릉이다. 태릉은 문정왕후 능이다. 예전에 선수촌이 있었고 지금은 진천으로 이사를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능을 더욱 보호하게 되었고 유네스코 등재된 자료를 들여다보면 조선왕릉(朝鮮王陵)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하며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고 왕실의 권위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능선길 좌우로 보호가 잘 될 것 같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화랑대와 그 주변이 어울려져 있다. 화랑대 인근의 골프장이 인근의 능과 학교와 조화를 이룬다.
화랑대역까지 그대로 내려선다.


힘겹게 20km를 걸었다. 화랑대역 인근에서 배고픔을 시원한 냉콩국수로 달랜다. 구 경춘선 철도가 우리를 유혹하지만 이제는 지친다. 전철에 피로한 몸을 싣는다.
혼자서 둘레길을 걸으면 사색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으나 동행과 같이 걸으니 지난번에 보지 못하였던 것을 보았다. 혼자는 그저 사색이고 걷는 것에 집중하여서 어려움이 있으나 동행이 있으면 같이 보고 같이 즐기는 즐거움이 오는 것 같다.
논어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뜻이 불현 든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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