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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Jan 24. 2021

서울 둘레길 3코스

서울 둘레길 3코스는 광나루역에서 출발하여 수서역까지다.


힌강북쪽에서 시작하여 한강을 건넌 후 한강을 따라 걷다가 고덕역을 거쳐서 올림픽공원을 보고 수서역까지 간다. 지루할 것 같지만 서울의 동쪽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재미있게 걸을 수 있는 트래킹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서울의 서쪽에 살다 보니 동쪽의 세상은 문외한이다. 너무 멀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광나루역을 나와서 광진교를 건넌다. 광진교는  한강대교 다음으로 오래된 다리였다고 한다.

1998년 오래된 다리를 안전상의 이유로 없애고 새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행자를 위하여 편도 2차선 도로를 왕복 2차선 도로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 광나루는 조선시대 동해안으로 가는 주요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차도선을 이용하여 차량을 건너게 하였으나 1936년 다리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한강을 건너면서 너도나도 한강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사진으로 담는다.

이제 한강이다. 한강은 이제는 서울 사람들의 휴식터다. 한강 종합개발사업이 있기 전 한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노익장을 자랑하는 세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환경단체에서는 한강의 백사장을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팔당댐이 건설되기 전 옛 얘기다.


팔당댐이 1973년 완공되면서 상류의  모래는 한강으로 오지 않는다. 지금의 행주대교 아래쪽을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가 반포대교 근처에서 강수욕을 꿈꾸지만 그것은 팔당대교를 폭발해야만 가능하다. 잠실 수중보나  신곡 수종보가 문제를 유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물이 많은 한강을 기억한 지 40년이 되었다. 한강 주변을 지속 개발하고 휴식공간을 개발하여 너도나도 한강에서 휴일을 즐긴다.


광진교 남단에서 출발하여 갈대숲이 이룬 정취를 맛본다. 암사 생태공원까지 한강을 즐긴다. 암사 상태공원에서 한강 물가에서 한강을 보고 건너편 워커힐호텔을 본다. 도로 밑의 토끼굴을 이용하여 암사동 선사유적지로 간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대홍수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홍수 때문에 흙이 쓸려가면서 오랜 시간 땅속에 숨어 있던 토기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발굴은 1967년부터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시 일제가 이곳을 발굴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식민사관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선사유적지를 발굴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괜히 우리의 역사를 발굴사여 그들보다 앞선 역사를 세상에 알릴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사유적지에 가면 체험도 할 수 있다. 둘레길은 그 유적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바라만 볼 푼이다.


사실 아파트에 살고 현대식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선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움집 등이 생소하고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주변의 동물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편안한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곳이 가장 쉬운 것이 움집이다. 땅을 파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산에 가서 요즈음은 비박하는 사람들이 텐트등을 사용하지만 특수전을 하는 군인들은 땅을 파고 그 속에 숨어서 지낸 것이 사실이다.  선사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우리 조상인지 모르겠지만 한반도에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암사동 유적지를 벗어나 올림픽대로 옆으로 암사수원지 근처로 간다. 구리암사대교 밑을 지나 암사수원지 근처에서 씽씽 거리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서 고덕산으로 간다. 나지막한 산이 어떻게 잘 어울려 있다. 도로 건너편은 자전거 도로다. 오르막을 오른 기억이 있다. 오늘도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는 라이더들이 넘친다.

고덕산이다

고덕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고려 충신 석탄 이양중 공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떠나 야인으로 이곳 산자락에 은둔생활을 시작했고, 후일 인근 백성들이 공의 고매한 인격과 덕성을 높이 기린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고덕산을 내려오면 택지개발지구이다. 고덕역까지 재개발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5호선이 하남으로 연장되기 전까지 종점이었어나 이제는 아니다. 공원에서 생태축을 따라 일자산까지 간다. 승상산이 먼저고 다음이 일자산이다.


승상산은 최근 명칭이 확정되었다.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일자산 줄기로 성상봉이었으나 천호대로가 개통이 된 후 분리되어 명칭을 공모하여 이렇게 확정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도 이곳을 이렇게 불렀다고 하니 환원이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승상산은 승상산에서 태어날 위대한 사람이 용마를 타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낼 것이라는 전설을 믿은 일제(日帝)는 승상산 정상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 승상산(丞相山)의 정승 ‘丞’자를 물 ‘水’자로 고치어 수상산(水相山)이라 고치고 돌에 새겨 놓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옴메기구덩이는 용마가 나오지 못하도록 흙과 돌로 단단히 메워 버렸다고 한다.
그 후 광복이 되고 정부 수립이 되었다. 당시 구천면장 이현섭(李賢燮)과 유지들은 승상산에 올라가 일제(日帝)가 박아놓은 쇠말뚝 3개를 뽑아내고, 산 이름을 성삼봉(聖三峰)이라 불렸다고 자료에 나온다.
옴 메기 구덩이가 있던 장소는 강동구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자연학습장으로 이용하도록 ‘길동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놓았다고 한다.


일자산이다. 위에서 보면 한일자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일자산은 강동구의 일출 일몰의 명소가 되어 있다.

일자산 능선은 너무 편안한 산책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하남 쪽으로 공원묘지가 있다. 이곳도 도시가 확장이 되면 망우공원처럼 될 것인지 궁금하다. 둔촌동쪽으로 둔굴이 있다. 둔촌이집이 고려말 공민왕 시절 신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은거한 굴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의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호를 둔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의 둔촌동의 동명 유래도 이집의 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자산을 내려와서 성내천을 가기 전 방이 생태보전지역이 있다. 방이동 생태보전지역은 면적 58,909㎡ 연못 형태의 인공습지이다. 물억새, 애기부들 등의 습지식물과 청둥오리, 물총새 등의 야생조류가 관찰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늦가을 겨울 초입이지만 철새들이 습지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생이 있을 경우 생태학습관도 있었다. 가을에 논에서 추수도 하고 겨울에는 눈사람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성내천에 도착하여 올림픽공원 근처에서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올림픽공원으로 가가 위하여는 둘레길이 아닌 하류로 가야 한다. 걷기 위하여 둘레길을 걷는 만큼 약간 더 걷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체육·문화예술·역사·교육·휴식 등 다양한 용도를 갖춘 종합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3개 테마공원으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산책·조깅 코스, 건강지압로, 인라인스케이팅, 레포츠 킥보딩, 엑스게임 경기장으로 이루어진 건강올림픽공원이고, 둘째는 몽촌역사관, 몽촌토성, 평화의 성지, 조각 작품 공원, 올림픽미술관으로 이루어진 볼거리 올림픽공원, 셋째는 호돌이 관광열차, 음악분수, 웨딩사진 찍기, 이벤트 광장 등으로 구성된 재미있는 올림픽공원이 그것이다.

우리가 그날 공원을 둘러볼 때 아이유 공연이 있었다.

다시 성내천을 따라 재미없는 길을 걷는다. 성내천을 따라 걷다가 고속도로를 만나 고속도로를 이웃하여 걷다가 탄천을 따라 걷는다.  수서역에 도착하여 종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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