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터키] #2 빗자루

순간의 기록, 첫 번째.

by Sophie




야근이 있던 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붐비는 트램에 탔다. 열 시가 훌쩍 넘어 집으로 향하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트램이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베야짓Beyazit 역에 멈추었고, 환경 미화원인듯한 중년의 남성이 트램에 올랐다. 하루 종일 이스탄불 거리를 쓸고 닦았을 빗자루와 함께였다.


안쪽에 앉아있던 청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저씨에게 자리를 권한다.

괜찮다며 몇 번을 사양하던 그는 결국 주변 승객들의 채근에 못 이겨 자리를 양보해 준 청년에게 고맙다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늦은 밤 지친 이들을 싣고 달리는 트램 안. 트램 안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들이 참 다양하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이는 노트북 가방과 서류가방을 들고서, 여행자들은 배낭과 캐리어를 들고서, 장사하는 이들은 복대 주머니를 차고서, 청소부 아저씨는 빗자루를 들고서.

참 당연한 모습인데 한국에서 보았다면 뭔가 낯설었을 것만 같다.
대개가 멀끔한 모습으로 지하철과 버스에 오르는 한국에서 왠지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타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낯섦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는 건 나 또한 그 모습을 생경하게 바라보았을 거란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이 곳에도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마는, 여전히 나보다 더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것만 같은 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이 사람들이 내 눈엔 참 선해 보인다. 이 사회가 참 멋져 보인다.

모든 일에는 그마다의 수고로움이 있는 법이고 직접 해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는 법이라는 걸 우리도 배우고 자란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우리 눈 앞의 현실이 책 속의 도덕적인 사회와는 많이 다름을 체감할 때면 괴리감이 밀려든다. 그리고 슬프게도 괴리의 끝에서 대다수가 손 내밀어 잡는 것은 '현실을 위한 타협과 침묵'이다.

터키의 아이들은 우리가 책에서 배운 '인간됨의 도리'를 눈으로 보고 자란다. 터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누구나 노약자를 보면 주저 없이 자리를, 차례를, 음식을 양보한다. 그런 어른들의 행동을 일상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레 배려와 양보를 배운다. 겉모습에 관계없이 나이 든 이를 공경하는 법을 배운다. 어른과 사회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타심은 결국 세대를 이어 이곳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그 일상 속에 섞인 나는 그 모습들을 지켜보며 다시 배운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도시에서 내가 외롭지 않은 건, 서울에만 가도 기운이 쭉 빠지는 내가 어마어마한 인구 밀집도를 자랑하는 인파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 아마도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이 사랑의 기운 때문인 가보다.


유럽에서 얻는 일상의 평온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개인적 공간(Personal distance, Personal space)의 존재와 그것을 위한 상호 간의 존중에서 온다면, 터키에서의 평온은 그 누구도 철저한 혼자가 아니라는 사람들 간의 애정과 관심에서 오고 있었다. 그러니 터키는 이방인인 나에게 그저 따뜻한 곳일 수밖에.


'인간人間'의 한자적 의미를 너무나 좋아하는 내게 사람 냄새 가득한 이곳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2015년 3월 21일 22시 29분, 퇴근길 트램에서.


'오늘도 터키'는 크게 세 가지 소제목으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그중 '순간의 기록'은 터키에서 살고 여행하며 마주한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글과 함께 첨부되는 사진들은 주로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이 많을 것이며, 흔들린 사진 한 장 조차 남기지 못한 순간의 이야기들은 오로지 저의 글로만 전달하게 됩니다. 멋진 사진들은 아니지만 그 순간의 울림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이전 01화[오늘도 터키] #1 한 뼘 또 한 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