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a est magistra vitae

역사는 인생의 스승

by Rudolf

historia est magistra vitae

역사는 인생의 스승


중고서점에 가서 이따만큼 두꺼운 인문서적을 샀다. 처음에는 인류와 시간과 공간 모두를 가슴에 안은 것만 같았다.

10페이지 넘기면서 고개가 뻐근해지고,

20페이지 넘기니까 눈이 지물지물해지더니,

30페이지 넘기려니 괜히 몸 여기저기가 가려워진다.

좀 쉬었다가 읽지 뭐.

그렇게 책을 놓고는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책장에 꽂힌 그 책 앞을 지날 때마다 괜스레 등골이 당기는 듯도 하고, 손동작이 어색해지는 듯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확 그 책을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그리고 눈에 띄는 문구.


historia est magistra vitae

역사는 인생의 스승


그러나 이 문구는 그 책에 실린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책 여백에 적어놓은 글이다. (어쩌면 내가 적어놓은 것일 수도……. 늘 그런 습관이 있었으니까.) 물론 이 구절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생전 처음으로 그 구절을 본 듯 생경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내가 그 구절에 감동, 적어도 동감이라도 느낀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사실 그동안 그 구절을 탄핵해 왔던 사람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물론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후세대가 전세대보다 정신면에서 우월한가? 진보했는가?

혹 교훈만 얻고 실천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간단한 예를 들어본다.

1차 대전 때는 1천만 명이 사망했다.

인류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었을까?

2차 대전 때는 최소 6천만에서 최대 9천만 명이 사망했다.

단지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그랬을까?

2차 대전 이후에도 지구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졌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각종 범죄는 더욱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공개적이고 광범위해졌다. 정치범죄, 경제범죄, 지능범죄까지 겹쳐서. 여기에 미래세대에게까지 공해와 신종 질병과 자연파괴에 의한 후유증 등등을 넘겨주고 있다. 혹 미래세대가 지금 세대보다 더 나은 도덕적, 정신적, 인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여겨 우리는 마음 놓고 각종 오물을 후대로 떠넘겨놓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흔히 말하는 역사의 진보는 무엇일까?



근대에 이르러 뉴턴이 만유인력을 깨달은 뒤, 이러한 자연현상을 사회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일었다. 즉 프랑스 혁명 이후 생시몽과 콩트 같은 이들은 인간 개개인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대해 인간성을 중시하라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오늘날 보편화된 사회학(sociology)과 실증주의(positivism)라는 개념이라고 한다. 물론 이 주장에는 비판을 받을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새로운 학문은 어느 한 단면만으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할 때 어떤 전환점을 기준으로 하듯이 사상이나 학문도 그 시발점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기에 위와 같은 다소 경솔하지만 그럴듯한 가설을 내세운 것이다. (뭐 이 글이 학문의 시초나 그 의미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 이 글에 오류가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고, 더 나아가 비판 또는 가르침의 글을 보내주시기 바란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감안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historia est magistra vitae

역사는 인생의 스승


대신


vita est magistra historiae

인생은 역사의 스승


여기에서 나는 또 하나의 억지를 부린다. 역사가 중한가, 인간이 중한가? 물론 우문이다. 그러나 위의 문구에서 두 단어를 자세히 보라. 역사와 인생.

이 두 단어는 모두 시간과 관계가 있다.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변한다.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 두 단어를 고정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역사와 인생을 곤충채집 상자에 집어넣고 핀으로 꽂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 정말 어떻게 될까? 영원히 썩지도 변하지도 않는 액자 속의 역사와 인생.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그 액자를 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지 않을까? 꿈틀거리고 있는 역사와 인생. 죽은 줄 알았던 역사와 인생.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스스로 생명을 얻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서로에게 속박되지 않고 자생력을 얻어 뻗어나가지만, 동시에 서로서로 떨어질 수는 없는 관계.

historia et vita sunt socii

역사와 인생은 동반자



유럽 중세에 왕들에게 통치술과 예법을 가르쳤던 책이 있다. 그 이름은 Secretum Secretorum. ‘비밀 중의 비밀’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기 위해 썼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확실치는 않다. 그 책에는 흔히 말하는 점성술에서부터 사교로 볼 수 있는 각종 잡설도 한가득 들어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을 언급한 것은 사실 이 글의 본질과는 관계없다. 다만 인간은 역사를 통해 온갖 잡설을 다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들먹였을 뿐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 또는 인생은 어느 한 명언이나 구절에 의해서 정의되거나 속박될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삶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위해 어떤 도구는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위 문장에서 ‘도구’라는 단어를 썼기에 혹 어떤 물체를 떠올리게 된다면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잘못이다. 도구라는 물체 또는 물질을 떠나서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면 안 될까? 예를 들어 ‘사고(思考)’.

그렇다. 우리는 사고를 통해서 거꾸로 우리 자신을 돌아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즉 인간. 인생.

이 글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되었기에, 마지막도 밑도 끝도 없이 마무리하련다. 역사든 인생이든 모든 것이 다음의 한 마디로 귀결된다고.


insolubilia | 해결불능의 명제


(시작은 거창한 듯했으나, 이렇듯 꼬리 내리고 만 것에 용서를 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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