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즐거운 상상과 해학으로 가득한 한국 고소설 천 년의 세계

by Rudolf

여기 소개하는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은 2010년에 발행되었으니 이제 겨우 10년 남짓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치 천 년 전에 나온 책과 같은 느낌이다. 그 내용이 고소설(古小說), 즉 옛 소설에 대한 것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 책은 찾아보기 포함 840쪽에 이르며, 양장본으로써 두께가 4cm가 넘는 두툼한 책이다.)

요즘 세대는 중등과정에서 국어를 깊이 있게 배워 웬만한 국어사(國語史) 정도는 다 알리라고 생각되면서도 사족처럼 몇 마디 열거하는 점 양해 바란다.

소설의 단계에는 고소설, 신소설, 현대소설로 나뉘고 있다. 이 중에서 고소설이라 함은 산문으로 기록된 것을 말하며, 고전설화(古傳說話)나 서사무가(敍事巫歌)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서사무가는 무속신화에 속한 것으로, 무속 인물을 중심으로 한 노래라고 보면 된다. 구비문학(口碑文學) 또는 구전문학(口傳文學)이라고도 한다.

과거에 저잣거리나 여염집 아낙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소설은 대개 필사본이었다. 여기에는 한문본뿐만 아니라 국문본도 있었으며, 중국 무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물론 서민들 사이에서는 국문본이 더 유행했을 테지만, 한문본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도 수월치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게다가 이러한 소설은 주로 약간은 허황된 이야기들이었으며, 그러다 보니 사실적인 서술이 담긴 책은 극히 적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이러한 문학 자체도 15세기 후반에서야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던 중 17세기에 들어서서 허균의 《홍길동전》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국문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홍길동전》은 일종의 영웅문학으로서, 당시 삶이 팍팍하고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에 서민들에게는 일종의 도피처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이후 중국을 무대로 한 영웅소설, 예를 들어 《조웅전(趙雄傳)》 같은 소설이 당시 큰 인기를 끌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단다. 그 이후 17세기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김만중의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박지원의 《허생전》 등의 본격적인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든 고소설이라 함은 19세기 이전의 작품들로서, 신소설(新小說) 이전에 나온 것들을 말한다. 그리고 신소설은 다들 잘 알다시피 이인직의 《혈의누》를 필두로 해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개화기 소설을 말한다. 한국의 소설문학을 시대적으로 나눈다면 크게 보아 고대소설, 고전소설, 구소설(신소설), 현대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신소설 이전의 것을 모두 고소설이라 보아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여기 소개하는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에서는 고소설(古小說)을 패설, 패관, 고설, 신화, 전기(傳奇), 패관소설, 패사, 통속소설, 언패류(諺稗類) 또는 이야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언(諺)’이 붙은 것은 한글로 된 소설이라는 뜻이다. 한편 연의소설(演義小說)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는 중국에서 나온 과장된 통속 역사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흥미 위주의 허황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하나의 도서관,

또한 그것을 넘어서 우주 그 이상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서관이다.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이야기와 지식을 모두 해석하거나 풀어서 나열하면 도서관 하나를 다 채우고도 넘친다. 게다가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수백, 수천, 수만 년을 뛰어넘어 장대한 세월을 다루고 있어서 그 모든 파노라마는 머리나 가슴이나 눈에 모두 담을 수도 없다. 우주나 대륙이나 해양에 대한 책도 그러하다. 그 광대한 광경을 어찌 다 눈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마침 다행스럽게도 아무리 오래된 과거나 먼먼 미래의 이야기나 그 드넓다는 우주 그 너머라도 우리의 작은 머리와 가슴에는 수없이 담고 또 담은 뒤에라도 무궁무궁히 더욱더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것을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책이다. 영화가 아무리 장엄하다 해도 책에 비하랴. 책의 상상력은 영화를 비롯한 어떠한 매체도 따를 수 없다. 책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공간을 넘는 어마어마한 여행도 할 수 있고, 인류 지고지성의 선(善)도 행할 수 있으며, 그 반대로 책을 통해서는 역사상 최악의 죄악까지도 범할 수 있다.

한마디로 책이야말로 전지전능, 만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에 담지 못할 지식과 지성이 어디 있으며, 책이 표현 못 할 사랑과 지성과 감성이 어디 있으랴. 그뿐 아니다. 책은 죄악과 참혹함과 비참함과 범죄와 증오 그 이상까지도 자유자재로 담을 수 있다. 이러하다면 사실 책이야말로 전지전능이요 만능마술이요 우주 최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책 제목이 참으로 감미롭다. 표지에도 붉은 잎 하나가 둥실 떠 있어서 옛 여인이 입술에 물고 있는 꽃 한 송이가 연상된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핏기 어린 한이나 불타는 정열의 마음을 떠올리셔도 좋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대상화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붉은 그 한 잎으로 표상화된 열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소설이라는 열정, 옛 선인들의 글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눈 시리도록 흠뻑 담겨 있는 그 행간행간. 바로 그 열정, 바로 책 사랑.)

나는 공상한다. 이 책을 독파하는 순간 신선쯤 되려나 하고. 기실 나는 이 책의 10분의 1도 읽지 못했다. 그것도 졸다 말다 하고 읽었으니까. 그러나 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첫 장부터 마지막 색인까지 모옹땅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부한다. 내 널따란 책장(冊欌)에 꽂혀 있는 다른 모든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책 하나하나의 책장(冊張)을 일일이 다 넘기진 않았어도, 하다못해 책 표지만 눈으로 슬쩍 보았어도 (그 어떤 책이라 하더라도) 그 책은 내 마음으로 쏘옥 들어와서 널브러지게 자리 잡는 것이다. 종이와 글자가 아니라 책 그 자체가. 그러하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나는 물론이요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다른 모든 이들은 책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과 지성은 물론 모든 감성과 감정과 만족의 부자가 되는 셈이다.


책은 열정이다


책은 그 자체로 열정이다. 열정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가? 인문교양서뿐만 아니라 학습서나 교과서, 하다못해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꿈과 지식에 대한 욕망과 성취의 의지 없이 책을 펼칠 수 있겠는가? 활자로 된 어떠한 책이든지 그것을 손에 드는 순간 우리는 모두 지식인이 된다. 지성인이 된다. 예술인이요, 몽상가요, 철학자요, 미래설계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책을 펼치는 그 순간 진정으로 우주 최강의 지혜자요 미래인이요 마술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책을 든 자의 운명이니까.

여기 책 한 권을 소개하면서 오지랖을 넘어 육칠팔구십지랖을 펼친다고 나무라실지라도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이러한 ‘랖’을 언제 어디서든 또다시 펼치고 펼칠 생각이다. 책만 바라보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사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다. 그저 페이지만 훌훌 넘기며 눈 호강만 한 뒤 덮어버린 책도 부지기수다. 눈에 보이는 것은 활자요 나머지는 여백이구나 하면서 헛헛웃음으로 책 한 권 떼고 마는 그런 책들. 그래도 (헛)배부른 것을 어찌하랴.



나의 운명


나는 이 책을 독파하지 못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자부한다. 그러한 반면 가끔 눈 호강을 위해 책장을 훌훌 넘길 운명 역시 부여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책뿐만 아니라 이따만큼 두꺼운, 그리고 당연하게도 끝까지 읽지 못한 다른 책들도 말이다. 더군다나 이미 지불한 책값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어디 가서 밥 한 끼 먹어도 몇 만 원 나오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사실 책값은 싼 편이다. 게다가 책 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지혜와 (책을 통한) 즐거움을 생각해 보시라. 아무리 비싼 책을 샀다고 해도 그 속에서 단 한 줄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면 책값 이상의 소득이 있지 않겠는가.

어쩌다 보니 책장사까지 되었구나. 그렇더라도 이 책의 서문격인 ‘독소한담(讀小閑談)’에 들어 있는 한 구절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련다.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책을 읽자. 읽기 쉬운 쪽글도 좋겠지만, 호흡 긴 소설을 읽자. 희로애락 인간사가 담긴, 우리네 인생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소설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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