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로 만든 이유는 솥크기 때문이다.
' 이 집 사위는 토종닭을 안 좋아하더라.
토종닭만 안 좋아했던 것이었노라...'
결혼 전, 본가에서는 백숙을 주로 복날이나 여름철에 먹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백숙과 삼계탕은 여름철 보양식이며 여름철 외에 먹는 건 특별식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백숙은 날 잡아서 하는 음식이었고, 닭백숙을 먹기 위한 가족모임도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백숙은 파티음식이다.
더욱이 보통 백숙을 했다면은 한두 마리도 아니라 대여섯 마리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 들통이나 솥단지를 걸어서 했었다. 모이는 가족수도 10명 가까이 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백숙이라는 건 나에게 노동과 같은 음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백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사실 안 먹어도 상관없기에 굳이 스스로 백숙 먹으러 가자거나, 삼계탕 먹으러 가지는 않는다. 갈 경우가 있다면 오로지 상대를 위한 배려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은 자취하는 나를 위해 백숙이며 삼계탕이며 이것들을 열심히 해 주시거나, 갖다 주셨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아는 엄마였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길 바라며 갖다 주신 삼계탕들이 나에게는 약간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그런데 현남편이자 전남친이 엄마가 갖다 주신 삼계탕을 잘 먹어주었다. 그 덕에 정성 어린 음식들을 버려질 일도 없었고, 잘 먹어주니 좋기만 했었다. 그때까지만 잘 먹어준다고 생각했었다.
결혼 후, 시댁가족들을 위해 한 첫 번째 음식이 백숙이었다. 공교롭게도 여름이었고 어르신들을 위한 보신용 음식이었다.
큰 솥냄비도 없어서 백숙용 닭으로 겨우 2마리를 했었는데, 적을 수도 있다며 어머님께서 2마리 더 해 오셨다. 7명의 가족이 모이는 거라서 그때까지만 해도 양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백숙은 꽤 남았고 남은 백숙들은 닭죽을 해 드시면 된다고 하시고 그렇게 며칠 드렸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백숙을 하셨다.
여름이라 온 가족을 위한 몸보신인 줄 알았는데 가을에도 하고 겨울에도 하고 봄에도 백숙을 먹었다. 가끔은 삼계탕도 먹었다.
퇴근하고 오면 집에 백숙이나 삼계탕이 있었다. 남편은 멋쩍은 표정으로 밥 할 필요 없잖아라고 했지만 내가 백숙이나 삼계탕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마리의 백숙이 반마리로, 두 마리의 삼계탕이 한 마리로 바뀌기까지는 꽤 몇 년이 걸렸다.
알고 보니 우리 시댁은 백숙을 매우 좋아하고 자주 먹는 음식이었다. 회사 다닐 때 아버님의 기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백숙재료를 사서 어머님께 드렸다. 그러면 어머님께서 푹 고아낸 백숙을 주셨다. 가끔 내가 해 드릴 때도 있었지만 그건 계획에 의해서 일정을 잡고 모두에게 알리고 난 뒤에 해서 드렸다. 그러다가 내가 백수가 되었다.
며칠 전 남편이 갑자기 아버님 기운이 없는데 백숙이나 해서 내일 다 같이 백숙 먹을까?라는 말을 툭 던졌다. 사실 아버님이 요즘 입맛도 없으시고 해서 그 말에 반사를 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어머님께 내일 백숙을 한다고 알려 드리고 부랴부랴 영계 네 마리를 아침배송으로 주문했다. 찰밥이야기도 하셔서 전 날 찹쌀도 불려 놓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 앞에 도착한 닭들을 끓는 물에 5분 정도 데쳐 손질하고 난 뒤 백숙에 넣을 마른 표고버섯을 불리고 마늘을 두 줌 가득 깠다. 닭 내를 잡기 위해 마른 생강편을 잔뜩 넣고 통마늘과 후추 그리고 통양파 하나를 넣고 팔팔 끓였다. 백숙 아래 깔 찰밥도 압력밥솥에 따로 앉혔다. 중간중간 기름도 걷어내고 굵은소금으로 간도 간간하게 맞추고 잘 불린 표고버섯을 넣고 좀 더 끓여 내서 점심시간 전 백숙을 완성시켰다.
약 3시간 반정도 걸려서 완성된 백숙은 시부모님 댁에 2마리, 시이모님 댁에 1마리 그리고 우리 집 1마리로 사이좋게 나눠 맛있게 먹었다는 전설이...
다 만들고 나니 이런 라임이 떠올랐다.
"백수가 만든 백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