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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숙희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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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21. 2024

취조

10.

“숙희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5년 전쯤 남편을 잃고 이 마을로 오게 되었고. 숙희가 일을 하면서 다방 주인이 돈을 많이 벌게 되었죠.”

박씨는 손 발이 묶인 자세가 불편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다방 주인이라면 그 수진이라는 마담을 말하는 건가. 그녀가 왜 돈을 많이 벌게 되었지?”

“그야 숙희년 얼굴 때문이죠. 반반하게 생긴 데다가 사별까지 했으니, 극장가 남자치고 숙희에게 흑심을 안 품은 남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방은 늘 그런 남자들로 가득 차 있고요.”


켄타는 숙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양이눈처럼 반짝이면서 오똑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까지. 켄타 역시 숙희에 대해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다방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가면 언제나 밝게 웃어주는 숙희가 있었기 때문에 켄타는 다방을 좋아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숙희는 켄타가 다방에 들어설 때면 어느 자리에 앉아있거나 모두를 제쳐두고 제일 먼저 켄타 옆자리에 앉아 쫑알쫑알 쉼 없이 떠들어댔다. 켄타는 무관심한 듯 숙희의 말에 잘 대꾸하진 않았지만 그런 숙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늘 심장 한구석이 간질간질 하긴 했다.


“예전에는 숙희를 두고 남자들끼리 쌈박질이 자주 났었습니다. 심한 경우엔 칼부림도 났었으니까요.”

“칼부림까지?” 숙희 때문에 사소한 다툼이 있다는 정도는 들은 바 있지만 칼부림은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였다.


“네. 일전에 인력거 김씨랑 최씨가 크게 싸운 적이 있었죠.”

“무엇 때문에?”

“김씨가 주로 다방으로 오고 가는 손님들을 태우고 다녔는데, 어느 날부턴가 최씨가 김씨의 손님을 가로채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김씨가 화가 나서 그만..”

“그건 숙희가 아니라 손님 때문이지 않은가?”

“최씨가 손님을 많이 데리고 오니, 숙희가 최씨를 보고 살살 웃어주었던 거지요. 그 모습을 본 김씨가 화가 나서.”

“단지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그래서 김씨가 최씨를 칼로 찔렀나?”

“아닙니다. 쌈박질을 하다가 칼을 꺼내 들었는데, 그때 김순사가 나타나서 김씨를 제압하고는 둘 사이를 중재했습니다.”

“호성?”

“네. 맞습니다. 극장가 사람들은 김순사 말이라면 잘 듣는 편이니까요. 아... 물론 그 뒤에 켄타 경부님이 계시기 때문에 더 그런 거겠죠.” 박씨는 일부러 켄타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 뒤로는 다툼이 없었나?”

“그 뒤로도 작은 다툼이야 여럿 있었죠. 김씨가 워낙 숙희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경계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죽은 김씨가 늘 싸움의 중심에 있었단 말인가?”

“숙희를 두고 벌어진 싸움 대부분에 김씨가 있긴 있었습니다.”

“너는 그자와 자주 만나서 술을 마셨고, 늘 김씨가 술자리에서 숙희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주로 숙희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했지?”

“늘 술에 취하면 곧 자기 여자가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인력거 끌어 모아둔 돈으로 큰 선물도 하나 했다고 들었습니다.”

“큰 선물? 그게 뭐지?”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랬는데...”


켄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많은 남자들이 숙희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남자가 있는 줄 몰랐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지만, 켄타는 질투심 같은 느낌의 어떤 것들이 가슴속에서 스믈스믈 올라왔다.

“한 대 더 피울텐가?”

“아..아닙니다.. 경부님 정말 죄송하지만 주..줄을 좀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몇 시간째 이렇게 있으니 너무 힘들어서..” 박씨가 얼굴을 오만상 찌푸리며 켄타에게 부탁했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위에서 하야시 경시님이 시킨 일일수도 있으니”

켄타는 그런 박씨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대답했다.


“저..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네? 범인이 잡힌다면 자네는 풀려나겠지. 하지만 빨리 잡히지 않는다면 자네가 오타를 죽인 범인이 될지도 모르지...”

“저.. 저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켄타의 말을 듣고 박씨는 오열했다.

“자네가 하건 하지 않았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쯤 알지 않은가. 위에서는 그저 범인이 필요할 뿐이라는 걸...” 켄타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제게 딸린 식구가 다섯 명입니다!”

“네 놈 식구 걱정하지 말고 네놈 걱정이나 해! 내가 이 방에서 나가면 다시 키무라 그놈이 들어올 테니 말야. 적당히 묻는 대로 대답하란 말야. 산목숨으로 시간이라도 벌고 싶다면...”

“흐흐흑.. 억울합니다..”

“자네가 굳이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었지. 굳이 말이야. 살인자는 자신이 저지른 장소에 꼭 다시 돌아간다는 말도 있지.”

켄타는 취조실 책상을 손가락 끝으로 콕콕 찍으며 박씨에게 말했다.

“저는 무식해서 그런 말 같은 건 모릅니다. 오타상이 몸을 숨기며 숙희를 쫓아가는 게 하도 이상해서... 죽은 김씨도 자꾸 생각이 나고..”

“죽은 김씨와의 정 때문에 사건을 저질렀나?”

“저는 절대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키무라 앞에서는 그렇게 대답하지 말게.” 켄타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박씨에게 말하고 취조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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