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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숙희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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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드레신 Aug 22. 2024

호성

11.

“어머! 김순사님!!!! 여긴 왠일이세요!!!!!”

숙희가 밝은 목소리로 다방에 들어오는 호성을 맞이했다.

“날이 하도 더워서. 나는 다른 거 마실 돈은 없으니께 그냥 시원한 물이나 한잔 줄 수 있는감?” 호성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휴! 김순사님도 참. 여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숙희는 호성을 자리로 안내하고 유난히 경쾌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걸었다.

그런 숙희의 뒷모습을 호성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


잠시 뒤, 숙희는 얼음이 담긴 쥬스를 들고 호성에게 왔다.

“아이구! 이 한여름에 얼음이 웬일이람!! 참 고맙구먼~ 참 맛이 좋구먼.”

호성은 얼음을 입에 한가득 넣고 정말 기분이 좋은지 아이처럼 허허 웃었다.

“김순사님 덕에 제가 아직까지 살아있잖아요. 호호호호” 천진난만한 호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숙희가 호성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게 무슨 소린감?” 호성은 숙희를 쳐다봤다.

“가게 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양복점 오타상이 어제..”

“응... 숙희도 들었는감. 그래도 그 작자 오래 살았구먼. 그 작자 목을 노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였응께. 근데 오타상이 죽은거랑 숙희 목숨이 붙어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거여. 허허허”

“오타상이 아니었으면 제가... 그 고갯길에서...”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는겨. 허허 이 사람 참 실없구먼.”

호성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그래도. 그.. 고갯길에.. 앞으로는 그 길로는 안 다닐려구요. 고마워요 순사님.”

“그려. 사람이 죄다 그 길에서 죽어버링께, 무슨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좀 편한 데서 직일것이지 뭐 한다고 그 꼭대기에서 사람을 죽여쌌는지 모르겠네. 매일같이 그 길 오르느라 내 다리가 휠 지경이여.”

숙희는 호성의 엄살기 가득한 투정마저 재미있는지 연신 까르르 웃었다.

“이건 비밀인데요. 그래도 이제 그 돼지 같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어 기분은 좋아요. 호호호.” 

호성은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평소에 호성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표정을 느끼며 숙희는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웃는 건 좀 그렇구만.” 호성은 툭 내던졌다.

“어머! 죄송해요. 순사님. 순사님 많이 힘드실텐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그럼 쉬다가 가세요.” 숙희는 호성의 평소 볼 수 없던 차가운 표정에 놀라 자리에서 빨리 몸을 일으켰다.


적당히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숙희는 다른 손님들 자리에 찰싹 앉았다.

즐거운 듯 연신 웃어대는 손님과 숙희를 보며 호성은 저들에게 사람의 죽음 따위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듯하다고 생각했다.

시원하게 쥬스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인력거 최씨가 다방으로 손님을 데리고 들어왔다.

호성은 문 쪽으로 가서 최씨를 마주했다.

“최씨. 나하고 이야기 좀 해야 쓰겠구먼.”

호성을 본 최씨는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다.

“김순사님 안녕하십니까?”

호성을 볼 때마다 최씨는 지난번 김씨와 다툴 때 호성의 몸놀림이 떠오른다. 평소에 실없이 웃으며 한껏 사람 좋은 표정으로 느릿느릿 다니던 호성이 김씨가 최씨에게 칼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싸움판으로 달려와 김씨와 최씨를 제압해 바닥에 내리꽂았던 것이다. 

공중에 떠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찰나의 공포감, 온몸이 바닥에 쿵 하고 부딪칠 때의 고통을 최씨는 잊을 수가 없었다.

“요즘 손님이 많은가 보구먼.”

“네 김씨가 그리 되어 좀 많은 편입니다.”

“김씨가 그리 되어 최씨는 좋다 말이구먼.” 호성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농을 던졌다.

“아..아닙니다. 저야 뭐 늘 사는 게 그저 그렇죠. 신날일이 있겠습니까.” 웃음기 없는 호성의 모습이 생소하기도 했거니와, 착한 미소 속에 가려져 있던 거구의 사내를 날 채로 보고 있으려니 최씨는 오금이 저렸다.

“잠깐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 좀 하세. 장사하는 곳에서 이렇게 서있지 말고.”

호성은 먼저 다방을 나섰다.

잠시 뒤 최씨가 따라 나오고 호성은 최씨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오타상이 죽은 것은 모를 리가 없을 것이고. 내가 왜 왔는지 알지?”

“네. 김순사님이나 켄타 경부님이 부를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만. 최씨는 오타하고도 안 좋은 감정이 많았응께. 더 요주인물이구먼. 나하고 긴 말 할 필요는 없고, 있다가 서로 와야겠구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으니 집에 미리 기별은 넣어두고 오는 게 좋겠구먼.”

호성은 감정 없는 말투로 최씨에게 말하고 다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나 먼저 가네. 요즘따라 바쁜 일이 너무 많구먼.” 호성은 최씨를 세워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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