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호성이 경찰서로 돌아오니 정육점 정씨는 이미 켄타 앞에 앉아 조사를 받고 있었다. 호성은 간단하게 켄타에게 보고를 하고 켄타 옆에 서서 조사과정을 지켜봤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종일 잔치 준비를 했다 이건가?”
“네.”
“오타상과 안좋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부인과 관련된 일이였다지?”
“네! 그 돼지같은 놈이!!!!!” 정씨는 흥분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진정하게. 이미 내용은 들어서 다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는 오타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좋았겠군.”
“그렇습니다. 그 땐 정말 그 놈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었습니다. 세상천지 자기 마누라를 범하려고 한 놈을 살려둘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아마 나였더라도 그랬을걸세. 나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테지. 자신의 아내와...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참으면 어디 그게 남자라 할 수 있는가. 그럼그럼. 나라도 바로 칼을 들고 가서 찔러 버렸을걸세.”
정씨는 켄타가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는지 들떠 연신 지껄이기 시작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아는 순간 꼬챙이와 소 잡는 칼을 들고 양복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돼지 같은 놈을 바로 죽여버릴려고요! ”
“그렇지. 그 얘기는 들었네, 하지만 거기서 바로 그 자를 죽일순 없었겠지. 자네가 달려올 걸 미리 안 그 작자가 돈을 주고 건달들을 사놓았으니 말야.”
“맞습니다! 제가 양복점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 덩치 큰 놈들이 저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이런..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 도저히 참을수가 없군! 그런 비열한 놈이 대황국신민이라니 내가 다 수치스럽구만!” 켄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자신의 입에 물고 정씨에게도 건넸다.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입에 담배를 문 채 켄타는 말을 이어갔다.
“자네로서는 정말 참을 수 없었을거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어제 생긴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흥분하는걸 보니.. 그렇지.. 아마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일거야. 감히 아내를 말이야. 그럼 참을 수 없고말고. 그래서... 자네가 죽였나?”
십수년간 범인을 취조해온 베테랑 형사는 마치 뱀이 먹이를 휘감듯 서서히 정씨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
“네? 네? 아..아니 저는..”
“오타가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을거야. 자네 부인을 범했다는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건달들을 풀어 오히려 자네에게 몰매를 가했을 때 자네 심정은 어땠겠나. 그 때부터 오타가 혼자 움직이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겠지. 우연찮게 어제 오타가 인적 드문 길을 걷게 된 것을 보았고, 자네는 기회다 싶었겠지. 그래서 오타 뒤를 따라가 해치운건가?”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정씨의 목소리가 너무 커 순간 서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 되었다.
“저는 정말 아닙니다!”
“아니라는 말은 여기 들어온 사람들 모두가 하네. 다시 시작해볼까.”
“자네는 평소에 오타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는 저번에 당한 그 일을 앙갚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그리고 어제 좋은 기회가 와서 오타를 해치웠다. 어떻게 죽인거지? 아까 뭐를 들고 갔다고 했지? 꼬챙이? 이봐 호성 이자가 말하는 꼬챙이를 본 적이 있나?”
“저..저는 정말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큰 소리로 정씨는 대답했다.
호성이 켄타에게 다가가 정육점에서 본 꼬챙이에 대해 설명했다.
“꼬챙이라... 바로 그거였군. 너는 지금 정육점으로 가서 그 꼬챙이를 가져 오도록해. 그리고 최부자집 잔치가 내일 모레라고 했나? 아마 이자는 그 전에 여기서 못나갈거 같으니 이자가 손질하던 고기는 적당히 다른 곳에 맡기도록 해. 최부자의 잔치를 망칠수는 없으니말야.”
켄타는 호성에게 지시사항을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범행동기도 범행도구도.
“네! 경부님!”
호성은 켄타의 지시사항을 듣고 곧바로 경찰서 밖으로 나갔다.
“이봐 거기 너!” 켄타는 순사보를 부른다.
“네! 경부님!” 순사보는 빠르게 뛰어온다.
“키무라에게 가서 지금 취조실에 있는 박씨는 유치장으로 옮기고, 잠시 쉬고 있으라고 해. 오늘은 정말 힘을 써야 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네 경부님!”
“겨... 경부님 저는 정말 아닙니다!” 다시 정씨의 큰 목소리가 서에 울려 퍼졌다.
“닥쳐! 있다가 증거물을 가지고 오는 대로 다시 시작할테다. 지금이 네 놈이 여유를 부릴수 있는 마지막 시간 일수도 있겠지. 이 놈도 저 방에다 집어 넣어둬! 네가 만약 사람을 죽인 짐승같은 놈이라면 너 역시 짐승처럼 대해주겠다.”
켄타는 정씨를 비어있는 방으로 보내고 의자에 앉아 책상위에 다리를 뻗치고 눈을 감았다.
오타와 정씨의 원한관계, 호성이 말한 그 꼬챙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 같았지만, 앞서 발생한 세 살인사건과의 연관관계가 부족했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하나’ 켄타는 지그시 눈을 감고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자 땀냄새를 풍기며 최씨가 서로 들어왔다.
“켄타 경부님을 좀 뵈러..” 누가 오더라도 긴장이 되는 공간. 와서는 안될 공간에 발을 들인 듯 최씨의 얼굴은 겁에 질려있었다.
“네가 인력거 끄는 최씨라는 놈인가?”
켄타는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최씨에게 물었다.
매일매일 인력거를 끌어 그런지 최씨의 몸은 탄탄해 보였다.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피부에는 매일 손님을 태우고 온 힘으로 달리는 사람답게 팔과 다리에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있는 듯 했다.
“네. 김순사가 경부님을 찾아가보라고 해서.”
“무슨일 때문인지는 알고 왔겠지?”
“네. 잘 알고 왔습니다.”
“여기 온 모든 사람들이 나는 아니라고만 말을 한다. 너 역시 너는 아니라고 하겠지?”
그 순간 박씨가 취조실 문밖으로 피투성이가 된채 질질 끌려 나왔다.
최씨는 사색이 된 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온 몸을 덜덜 떨었다.
“이봐. 왜 그러나? 하하. 저 모습을 보니 조금 감이 오나? 너의 대답에 따라서 저 모습이 곧 네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켄타는 책상서랍을 열어 뒤적거리더니 손톱깎이를 꺼낸다. 길어진 손톱들을 정성스레 톡톡 다듬었다.
“제가 오타상에게 안좋은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을 죽일 정도로 나쁜 감정이 있었던건 아닙니다. 평소에 오타상이 여자들을 희롱하는 모습이 싫었는데 그 날따라 숙희를 유독 괴롭혀서 한 마디 했던게... 그 일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건 말이 안됩니다.”
“넌 평소에 인력거 끌던 김씨랑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
“네? 그.. 그겐 무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나?”
“김씨와 손님 때문에 자주 다툰건 사실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김씨가 자꾸 시비를 걸어와서 어쩔수 없이 그랬던 겁니다. 그 양반이 숙희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 바람에...“
“모든 싸움이 그 자 때문에 일어났단 말인가?” 켄타는 손톱에 집중한채 말했다.
“저는 숙희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단지 다방으로 오가는 손님들을 태우면 수입이 괜찮아서 그랬던건데 김가 그놈이 막무가내로 저한테 화를 내는 바람에 참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타상은 원래 그런 쪽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숙희를 괴롭히기에 제가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켄타는 나머지 손톱마저 다 정리한 후 책상위에 다리를 얹고 눈을 감았다.
“계속 얘기해봐.”
“더..더이상은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정도 일로 사람들이 몰려와 몰매질을 하고, 칼을 들고 달려들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숨기지 말고 말할수 있을 때, 다 말하는 것이 좋을거다. 아까 그 구두닦이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눈을 감은채 켄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