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몇 시간째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 듣고 있는 켄타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사건. 목격자도 없고, 사건의 인과관계도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하야시가 통보한 시간은 고작 일주일.
켄타는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인력거 김씨와 오타의 죽음은 원한이라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날품팔이하던 두 명의 죽음은 어떠한 인과관계도 밝혀낼 수가 없었다.
이 마을에 사는 자들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만한 행동을 했거나, 사람들의 분노나 원한을 사는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인 그들을 죽여 무슨 이득을 취할 것도 없거니와, 그들이 그들의 조국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했다는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사건의 범인은 하나라고 켄타는 굳게 믿고 있었다.
범인이 일부러 그런 표식을 남겨둔 것인지, 어쩌다 보니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시신에서 동일한 흔적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보아 켄타는 범인은 동일인일 거라 생각을 했다.
눈을 뜨고 철장 안을 바라보니,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들을 보는 듯했다.
박씨는 피투성이가 되어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고, 정육점 정씨는 덩치에 맞지 않게 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끝없이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주장했던 인력거 최씨도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가락 마디마다의 굳은살만 만지막 거리고 있었다.
적막을 깨고 호성이 서로 들어왔다.
“켄타 경부님. 좀 늦었구먼요.” 호성이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켄타는 호성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호성이 들고 온 꼬챙이를 살펴본다. 날카롭게 갈려 있는 끝을 보고 켄타는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틀림없어. 호성! 취조실로 저 덩치 데리고 오고. 키무라!! 키무라 어디에 있나! 당장 취조실로 오라고 해!” 켄타가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무라는 어디서 술이라도 한 잔하고 왔는지 상의 단추들을 반쯤 풀어헤친 채, 팔자걸음으로 서를 휘적휘적 걸으며 자신의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저 정도 덩치와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겠지.” 키무라는 보기에도 단단한 몽둥이와 소를 몰 때 쓰는 채찍을 양손에 들고 이를 활짝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정육점 정씨는 취조실 안에서 양손목이 줄에 묶인 채, 온몸을 떨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깨그작 깨그작. 아까부터 얼마나 손톱을 물어뜯었는지 손톱 끝자락에 빨갛게 피가 스며들었다. 취조실 문이 다시 열리고, 켄타와 키무라가 들어왔다. 정씨는 호성이 없다는 사실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정씨의 목소리가 취조실 안에 울려 퍼졌다.
켄타는 그런 정씨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턱 짓으로 키무라에게 신호를 보낸 뒤 정씨 맞은편 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죄를 인정하는 건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켄타가 물었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네가 모두를 죽였다고 자백하는 건가?” 켄타는 정씨와 눈을 맞췄다.
“아닙니다!!!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씨의 얼굴은 땀과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엉망이 되었다.
“잘못은 했지만, 네가 죽이지는 않았다. 키무라 시작하지.” 키무라에게 짧게 명령을 하고 켄타는 의자에서 일어서 담배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취조실을 채우는 동안 키무라는 가지고 온 도구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이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 받았을 때 같은 표정을 보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구들을 만지작 거리며 켄타에게 물었다.
“경부님 범행도구가 뾰족한 뭔가라고 하셨습니까?”
켄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하하하 아까 호성에게 그 말을 듣고 제가 이걸 챙겨 왔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저 놈도 똑같이 당해보면 여기서 자기가 한 짓을 다 말하게 될 겁니다!” 자신 있는 목소리로 키무라가 지껄이며 꺼내 든 것은 바늘이 가득 담긴 통이었다.
“저 놈 아까부터 손톱을 아주 맛있게 씹어 먹던데, 하하핫 여기부터 시작해 볼까?”
키무라는 즐거운 듯 바늘이 담긴 통을 들고 정씨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정씨는 키무라가 들고 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공포에 질려 의자에 묶인 채 취조실 구석으로 뒷걸음칠 치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정씨가 넘어진 자리에서 키무라의 발까지 액체가 흘러내렸다.
“뭐야! 시작도 하기 전에 오줌을 지린거야! 크하하하핫! 이 놈 덩치만 컸지 겁쟁이구만 으하하하핫!” 키무라는 똬리를 틀고 먹잇감을 노리는 뱀의 혀처럼 스믈스믈 정씨에게 다가갔다.
“네 놈이 사람을 찔러 죽인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키무라는 재밌다는 듯, 넘어진 정씨 앞에 앉아 통을 열기 시작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정씨는 넘어진 채로 버둥버둥 거린다. 온몸에 오물을 덮어쓴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키무라는 버둥거리는 정씨의 손목을 잡고 손톱 밑으로 바늘을 꽂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정씨의 고통에 소리치는 소리가 경찰서 전체를 뒤흔들었다.
“엄살이 심한 놈이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키무라는 통에서 두 번째 바늘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