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의 원동력이 되어 온 '비합리적' 감정들에 대하여
나의 전쟁소설이자 나의 로미오와 줄리엣
영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신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해서 내린 평가이다. 그때는 왜 전쟁 소설마저도 ‘사랑’이 주제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소설은, 전쟁의 나아가 삶의 부조리를 다루고자 하는 소설이 아니었던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주제가 사랑으로 귀결되는 작품들에 지쳐, ‘사랑’이라는 주제에 의문을 갖게 된 나의 생각을 집약한 물음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를 문화 산업에 종속된 대중문화에서 나타나는 행태라고 생각했다.
“관리되는 사회의 문화를 비판했던”
아도르노가 이야기 한 문화 산업의 한 형태로 보았던 것이다. 대중이 아닌 산업이 일차적 관심사가 되어 가장 다루기 쉽고 무난한 주제인 사랑을 선택해 대중문화를 양산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배포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며, 이를 확신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모든 주제가 사랑인 이유는 그만큼 사랑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들에게조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니까.
사랑은 매우 비합리적인 감정이다. 사랑이라는 무형의 감정으로 인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의미인 나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과 함께 이별의 아픔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은 사랑에 대한 감정소모를 더 비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 사회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의해 움직여왔다는 사실이, 가장 비합리적인 감정인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민주주의가 숭고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