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태호 형에게 다시 톡이 왔다.
충격이 컸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그 부위라니. 수술 후 목숨은 건졌지만 남자구실을 못한다며 괴로워하더군요. 청상과부로 살바에는 차라리 이혼녀가 낫지. 염불 외듯 중얼거렸어요. 그러면서도 술에 취하면 다시 수연이랑 살고 싶다. 이 몸뚱이로는 안 되겠지 하며 쓴웃음을 짓더라고요. 또 한 번은 죽어버리는 게 낫다며 베란다에 매달린 놈을 끌어내린 적도 있습니다.
실은 그놈 아직도 존스홉킨스 병원에 있어요. 거기가 성전환 수술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곳이에요. 그걸 알고 그 병원에서 고환암 수술을 받은 거죠. 혹시나 절단되면 인공성기를 달려고요. 이제 오늘이 세 번째 수술이네요. 신경접합에서 자꾸 실패하나 봐요. 겉 형태는 멀쩡한데 기능이 안 돼요. 그거 돌아오게 하려고 테스토스테론을 과용량으로 때려 부으니까 암이 재발한 거죠. 호르몬 교란이 암세포를 증식시켰어요. 어렵게 부지한 목숨인데 왜 욕심을 부리는지 원.
수연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슬픔이 증류되어 눈물로 흐른다면 결심은 수분과 염분의 결정체였다. 태호의 아픔은 그녀의 감정보다 이성에 호소하고 있었다.
수연은 다시 태호를 사랑할 결심을 했다. 다시가 아니다. 애초부터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사랑했다. 태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그가 준 사랑에 대한 반응이었다. 수연은 사랑받는 대상(object)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사랑을 하는 주체(subject)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결심을 전할 편지를 썼다.
결혼할 때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있어.
늙어서 네가 치매에 걸린다면 요양원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살뜰히 돌봐주어야지.
그렇게 마음이 동했어.
받은 사랑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돌려줘야지 했던 거 같아.
예전에 파리 갔을 때 기억나? 노숙자들이 개랑 다니는 거보면서 네가 말했잖아.
저 개들은 꼭 예수 같아. 주인이 병들고 가난해도 사랑해 주잖아.
아무리 죽어 마땅할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은 나를 아들로 사랑하실 거야. 그 죄는 벌할지라도.
나도 너에게 그런 사랑 주고 싶다. 무조건적인 거.
네가 도박중독으로 손가락을 잘라도, 백 킬로가 돼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해도 계속 사랑해주고 싶다.
너는 내 사람이니까. 그런 사랑 내가 할 수 있었으면.
나 그렇게 살고 싶다. 수연아.
태호야.
네가 말한 그 사랑 내가 하면 어떨까?
내가 다리가 잘려도 눈이 안 보여도
너는 나를 사랑했을 거잖아.
네가 남자가 아니어도
그깟 거 없어도
조건 없이 널 사랑해 주는 거야.
우리 이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닌 과정이었어.
이제 관계의 마침표를 쉼표로 바꿀게.
너의 병으로 우린 잠깐 쉰 거뿐이니까.
네가 죽는다 해도 우리 사랑은 아름다울 거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첫 경험을 했으니까.
그게 성공이니까.
지금도 나는 네가 느껴져.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내가 있다면 분명 네 안에 존재할 테니까.
우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너와 함께 있어.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니까.
그건 생로병사가 숙명인 인간이 생명현상을 뛰어넘는 거고, 그게 곧 신의 사랑이야.
I love to you.
I love you보다 I love to you 라고 할게.
너를 사랑하지 않고 너에게 내 사랑을 주는 거니까.
그럼 네가 죽어도 너에게 준 내 사랑은 없어지지 않을 거야.
길가에 핀 잡초에도 저 하늘의 별에도 그 사랑 주겠지.
이제 네가 없는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사랑으로 나는 행복해질 거야.
쓰다만 편지였다. 마무리를 위해 무던히 고심했지만 메꿀 수 없었다. 미완성도 완성이야. 가볍게 웃으며 수연은 이 편지를 태호 형에게 보냈다. 그리고 출국 게이트로 들어섰다. 가장 빨리 뉴욕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