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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에 Aug 13. 2022

13. 노후계획은 존버

이사무는 요즘 잠을 자는 7시간을 제외하면 17시간 동안 돈에 관한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자는 시간에도 돈에 관한 꿈을 꾸는지 모른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어떻게 하면 월급에서 돈을 아껴 투자를 하고 큰 자산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 이사무는 정말 악착같이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에게 이사무처럼 가난을 경험하게 하기 싫어서 매달 초과근무는 가득을 채우며 일했고 별도 수당이 나오는 행사 차출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남들은 1년에 두세 번은 간다는 해외여행은 가지 않았고 가족여행도 신혼 때는 제주도, 첫째 아이가 태어나곤 강원도,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는 전라남도로 가고 있다. 다른 여자들은 신혼여행 때 면세점에서 하나 사고 아이 낳을 때마다 남편에게 하나씩 받는다는 명품백도 김실장에게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길을 가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외제 차는 커녕 국산차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옵션을 다 제외하고 최저가로 구매했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현실은 계속 막막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4인 가족이 외벌이 공무원 월급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는 사무관 승진을 하면 형편이 훨씬 좋아질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무관 승진을 하니 연봉제를 적용받으면서 매년 월급이 오르지 않게 되었다. 성과등급을 낮게 받으면 오히려 전년보다 연봉이 줄어들 수도 있다. 공무원은 잘리지 않아 안정적이고 연금이 있으니 노후가 보장된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지금 한창 일하는 이사무 같은 세대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공무원 연금은 눈덩이 적자로 결국 개혁될 것이고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임금은 동결될 것이고 LH 사태 등으로 인해 공무원들의 부동산 투자는 막히고 있다. 겸직금지로 인해 개인의 능력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수도 없다.

이사무는 어릴 때부터 아무도 모르는 습관 하나 있었다. 길을 가다 보이는 간판에 있는 글자들을 숫자로 바꿔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며 계산하는 버릇이다. 그래서 어쩌면 숫자를 많이 다루는 금융권으로 가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그 습관으로 이사무는 자신의 현재 자산과 부채 그리고 노후까지 필요한 돈의 액수에 대해 매일 매시간 계산을 해보았다.

그리고 정말 현실적인 이사무만의 전략을 세워가고 있다.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기 즉 '존버 전략'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다. 과거 60살이 평균 수명일 때는 30~40대가 가장 활발하게 일을 했다면 100살이 평균수명인 노령인구시대에는 50~60대도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한다. 지금은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막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정년연장을 하지 못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취업할 젊은이보다 일자리가 더 많아 인력난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도 재정적 어려움에 처할 것이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위해 정년연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65세 이상으로 정년이 늘어날 것이다.

요즘 조기 은퇴가 유행이지만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서 남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외로움을 겪는 파이어족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여행을 다니며 1~2년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근처 도서관을 가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 게 없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다 회사에 가고 바쁘게 일하다 보니 자주 만날 수도 없다고 한다.

주변 어른들을 보면 퇴직 후 오히려 불규칙한 생활과 무기력으로 건강을 잃는 분들이 있다. 김실장의 아버지도 사업을 정리하고 집에 계시다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사무의 아버지도 당뇨로 고생하시는데 가지고 계신 기술력으로 직장을 얻으셔서 잠시라도 일하시면 당 수치가 놀랍게 좋아지고 그만두시면 다시 수치가 올라가곤 한다.

실제로 코로나 때 투자에 성공해서 조기 은퇴한 미국의 젊은 투자자들이 최근 주가와 가상자산 폭락으로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이사무는 김실장과 상의해서 '존버 전략'을 시행 중이다. 일단 신용카드를 다 없애고 아이들 학원도 꼭 필요한 곳만 다니게 해서 사교육비를 줄였다. 그리고 이사무와 김실장의 노후를 위해 개인연금 등의 금융자산을 우선 작은 규모로 모으고 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돈을 잘 모으고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사무의 상사는 연봉이 1억 원이지만 아이들 사교육비가 엄청나 매년 3천만 원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사무도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몸이 좋지 않아 육아휴직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지만 이것저것 다 떼고 실수령액이 30만 원 수준이라는 얘기를 듣고 바로 포기했다. 결국 끝까지 버티며 일해서 원화를 채굴하는 것만이 평범한 공무원의 현실적인 존버 전략이라 생각한다.

경제 방송에서 '존버'의 뜻을 멋지게 해석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존경하는 버핏처럼 투자하자"

워런 버핏처럼 11살부터 투자하진 못했지만 100살까지 투자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워런 버핏도 지금 자산의 대부분은 60세 이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사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 삶에 대한 명대사가 있다.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살지? 50은? 살아 뭐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50? 똑같아. 50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13살 때 잠깐 낮잠 자고 딱 눈뜬 거 같아. 아마 80도 똑같을걸" 나이가 든다고 어느 날 갑자기 좋은 날이 오지 않는다. 이사무는 인생을 길게 보고 지금부터 꾸준히 버티는 자가 결국 살아남는 가 될 것이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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