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의 함정
회사라는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 센스가 있는 사람,
센스는 없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
눈치 보는 사람, 대놓고 일 안 하는 사람까지.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딱 한 가지 유지하고 있는 태도가 있다.
업무 영역이 애매하면, 일단 내가 하는 태도다.
즉, 남들보다 조금 더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이 태도는 장점이 있다.
애매한 영역이 생길 때, 프로젝트는 보통 멈춘다.
그때 누군가 “제가 해볼게요”를 말하지 않으면
일은 자연스럽게 유실된다.
PM은 그런 유실을 막는 사람이다.
일을 잘한다는 건 때로
‘일이 안 되게 만드는 공백’을 먼저 발견하고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애매하면 일단 메운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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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태도는 잘못하면
동료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왜 저 사람이 내 일을 가져가지?”
“내가 해야 하는데, 왜 저 사람이 하지?”
이런 감정이 생기면
그 순간부터 일은 ‘협업’이 아니라
‘기싸움’이 된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건 소통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선 넘지 않는 소통이다.
내가 애매하다고 판단한 일을
‘일단’ 손대기 전에 동료에게 물어본다
“이 부분이 지금 애매해서 어떻게 할지 상의하고 싶습니다. “
이 한 문장이 있으면
일을 ‘가져가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지켜주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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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애매한 업무는 내가 한다”라는 태도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반대에 가깝다.
나는 일을 미루고 싶어질 때가 많고,
귀찮은 걸 싫어하고,
회의가 많아지면 기가 빨린다.
그래도 ‘일단 내가 한다’를 유지하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이 프로젝트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 미뤄진 애매함은
내일 더 큰 이슈가 되어 돌아온다.
그때는 보통 더 많은 사람이 고생한다.
그래서 나는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게 하는 쪽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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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글의 제목이 다시 떠오른다.
‘일을 잘한다는 착각’
나는 한동안
‘조금 더 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믿음이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는 것도 알게 됐다.
조금 더 하는 태도는
프로젝트를 앞으로 밀어준다.
하지만 그 태도가 습관이 되면
내가 모든 애매함을 떠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순간부터는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건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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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더 한다’는 태도를 유지하되
두 가지 기준을 더 붙이려고 한다.
첫째,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공백을 메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일을 대신 가져오는 일인지.
둘째, 내가 이 일을 했을 때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결국 ‘조금 더’의 핵심은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망가지지 않게
공백을 메우겠다는 책임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소통이라는 동반자와 반드시 함께 가져야
건강하게 오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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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내가 이 회사 일을 다한다’라고 생각하던
거만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 일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을 잘한다는 착각은 위험하다.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을 대할 때 애매함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공백이 생기면 먼저 메모해 두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영역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저마다의 상황에서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 회사를 통해 성장하길 원한다면
내 태도가 어떤지 점검해 보면 좋겠다.
사람이 하는 일엔 늘 정답이 없지만,
나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