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간수집가 Oct 03. 2024

타샤의 방

낡은 오두막처럼 개인적인 공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5평 남짓 작은 공간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작업실, 때로는 모임을 열고, 때로는 공간을 빌려주며 자유롭게 활용해보고 싶어 일 년 계약했다이곳은 50년이나 된 낡디 낡은 작은 구옥이다. 내가 좋아하는 리얼 빈티지라는 것. 이전 계약자는 서예인으로 오랫동안 그의 작업실로 지냈다고. 나는 이곳을 직접 뜯어고치기로 한다. 천천히 나의 페이스대로. 


바닥부터 천장, 벽까지 모두 철거하고 새로 입혔다. 한겨울에 계약하는 바람에 몸이 성하지 않았지만 즐거웠다. 삐까뻔쩍 새로운 공간을 만들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나의 아이돌, 타샤 튜더 할머니가 지낼법한 다락방정도면 좋겠다고 했다. 


타샤 튜더 할머니는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책 등 수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라이프스타일도 존경한다. 그녀는 버몬트의 대지에 그의 가족과 함께 집을 짓고, 자연과 함께 지냈다. 여러 마리의 코기와 고양이, 새, 심지어 뱀과도 친하게 지내며. 대지에는 온갖 식물들을 키워, 꾸미지 않은 그녀만의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행궁동은 신기한 곳이다. 재개발이 막힌 곳이라 그런지 도심 한가운데 있지만 시골의 정치도 가지고 있다. 이곳을 처음 보았을 때, 온갖 서예지가 뒤덮인 벽이었지만, 어쩐지 나의 영감을 자극했다. 여기서 아늑한 시골집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처음 나는 이 집을 '코티지 하우스'라고 불렀다. 타샤 튜더의 다락방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오두막집을 연상하며.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 로드멜 지역에 '몽크스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인 집을 구매하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몽크스하우스에는 한쪽 구석에 작은 오두막 집이 있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책상 하나만 두고 집필에 몰두했다. 나 역시 그런 공간을 원했다. 울프의 오두막이나 타샤 할머니의 다락방처럼 개인적인 공간. 그래 이곳을 '타샤의 방'이라 부르자. 


처음 이곳을 계약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개인 작업, 컨설팅, 교육, 워크숍, 모임...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공간 컨설팅과 워크숍 등 다양한 모임을 가졌다. 북클럽, 손 편지 쓰기 모임이나, 꽃꽂이 프로그램, 행궁동 디깅 클럽 등 만들어보고 싶었던 모임을 가져봤고, 독립출판 모임이나 씨네클럽처럼 예상치 못한 모임도 생겨났다. 물론 준비부족으로 시도조차 못한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 되었다. 


타샤의 방
이곳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10:00 AM | 행궁동의 시작을 함께 열 수 있는 시간

열한 시는 행궁동을 먼저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보통 열한 시라면 활기를 가져도 괜찮을 법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조용하다. 행궁동은 데이타임 동네다. 오전에도 밤에도 낮만큼의 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문밖에는  택배 배달하는 트럭이나 오토바이의 소리만 들릴 뿐.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의 오전 시간을 만끽한다. 


14:00 PM |  붐비는 행궁동 속 쉬어가는 나만의 공간

이곳은 아주 작은 창문하나만 있어서 불을 켜지 않으면 제법 어둡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주황빛 전구색 조명들만 써서 낮에도 차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해가 솟은 대낮에는 활기를 띈 행궁동과 대조되는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정말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타샤의 방은 인도와 맞닿아있는 곳인 데다 낡은 구옥이라 방음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낮시간은 대부분 손님을 불러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나 홀로 있으면, 주로 음악을 틀어 놓곤 한다. 


17:00 PM | 저물어가는 하루

노을이 저물어가는 행궁동. 높은 건물이 없는 이 동네는 마지막까지 노을이 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팔달산에서 저물어가는 노을을 지켜보다 내려온다. 문을 열면 이곳은 이미 불이 켜져 있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친구들을 불러 가벼운 모임을 열었다.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할 말이 너무 많다.  


20:00 pm | 몰입의 시간

어둠이 내리깔린 행궁동의 밤. 작은 언덕길을 올라가 골목길에 들어서면 그곳에는 아늑한 코티지 하우스, 타샤의 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낮에는 제법 화려한 젊은 동네일지라도, 저녁이 되면 역시 조용한 주택가가 된다. 대부분의 카페나 레스토랑도 서둘러 마감을 준비하고 있어서 행궁동의 밤은 다른 곳들보다 더 일찍 시작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작은 키친이 보인다. 왼쪽에는 내가 지낼 작은 방이 오른쪽에는 초록의 화장실이 있다. 조용한 피아노 재즈 연주가 제법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따뜻한 차를 내려 마신다. 이곳에서 나 혼자서는 절대 식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데다, 이곳만큼은 지극히 살림의 냄새가 없는 곳이길 바라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