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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수집가 Oct 10. 2024

한옥에서의 하룻밤

한국의 앤티크 하우스

인생의 한 번쯤은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어린 시절 할머니댁을 상상해 본다. 모기장 속에서 잤던 추억을 되짚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지만, 그곳은 오래된 가옥이지, 한옥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집의 형태가 있겠지만 '전통 한옥'은 한국의 앤티크하우스라는 상징적인 존재다. 나무기둥과 처마, 온돌과 마루, 그리고 마당을 가진 집. 이 모든 것들이 자연과 유기적으로 이어져, 시간을 넘어선 한국 고유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비 오는 날에는 처마 밑 툇마루에 앉아 중정을 바라보고, 어둠이 내리깔린 밤에는 마당 위의 별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아직 한옥에 살 자신은 없지만, 하룻밤 묵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결국 한옥에서의 하루를 결심했다.


종로에 있는 한옥을 예약했다. 익선동에서 인사동까지 종로 한복판 어디든 가기 좋은 장소다. 사우나처럼 찌는 듯한 공기 속에서 얼마쯤 걸었을까. 큰길에서 좁은 길로, 골목에서 골목으로, 점점 길을 좁혀 들어가니, 그곳에 아담한 한옥집이 있었다. 도심 속에 일부러 숨겨놓은 것처럼. 대문 키는 최신식 터치 패널이지만,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전통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내가 한옥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높은 문턱을 넘으면, 그 안에는 중문이 있다. 한옥은 바로 집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현관처럼 보이는 이 중문을 지나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면 작은 중정이 보인다. 여기서 감탄이 나온다. 도심 한복판 속에 이런 고즈넉한 한옥이 있다니! 내가 예약한 곳은 한옥 독채가 아니어서 2인실을 예약했고, 당일까지 어떤 객실이 배정될지는 몰랐다. 입실 전 문자로 '산'이라는 객실 이름과 자물쇠 비밀번호를 안내받았다. 아날로그지만 확실한 방범책이다. 방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더운 날씨에 지쳐있었는데, 관리인께서 미리 에어컨을 켜놔주셨나 보다. 현대식 한옥의 편리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2인 객실 사이즈는 비즈니스호텔보다 조금 작은 정도로 이불을 깔면 방 안이 거의 다 채워질 정도지만, 전용 욕실이 포함되어 있어 불만은 없다. 고상한 조선의 여인이 썼을 것 같은 전통 화장대가 놓여있다. 오래된 한옥 집에 손님으로 잠깐 방을 빌린 듯한 착각에 신이 났다. 문지방을 넘어 온돌방에 짐을 푼다. 툇마루에 앉아 중정을 바라본다. 본채 건물을 마주하고 그 너머 독립된 작은 별채가 보인다. 이곳은 공용 주방. 그리고 그 옆으로 또 다른 별채가 보인다. 저곳은 관리인의 방. 한옥은 이렇듯 각각의 건물이 독립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건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이 연결되는 공간이다. 


어둠이 내린 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옥집이라 어쩔 수 없는 방음문제도 오히려 다들 소곤거리며 조용히 지내는 분위기가 형성돼서 그런지, 서울의 밤도 고요히 보낼 수 있었다. 포근한 아침 볕에 잠이 깨니, 한국적 미감뿐만 아니라 한국적 낭만을 하룻밤 체험한 것 같았다.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마치고 나니, 한옥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 그래서 4주간 한옥 수업을 들어보았다. 한옥 건축가가 선생님께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한옥 짓지 마세요”

비용적인 문제부터 실용성의 한계까지 현실적인 난관이 많으니 확실히 힘든 길이라는 것이다. 낭만적인 한옥 호텔에서의 하룻밤과는 달리, 주거 공간으로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한옥에서 사는 꿈은 현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옥이 주는 감성은 쉽게 잊을 없다. 고민은 계속된다. 나는 언젠가 한옥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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