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직장인 17년 차, 40대 중반, 기혼, 외벌이, 자녀 둘, 외국계 스타트업, C-Level.
나의 일과 관련된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심한 방황도 오래갈 수 없었다. 이 자리가 내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시선과 여건을 고려했던 내 선택은 모든 40대 가장들이 그러하듯 정당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스스로에게는 예외가 되었던 당위성. 내게 유익하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보다 주위 환경과의 균형, 안정감, 고소득을 통한 가계유지와 발전 등을 채울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었다. 적당히 맞출 수 있는 일자리라면 '괜찮겠지' 정도의 생각인 것이다. 이게 정말 내게 유익한 것인가?
늘 고민이 되고 줄타기를 하게 되는 두 가지는-개인으로서의 나 자신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이다. 왜 이 두 가지는 늘 동반성장하기 어려운 것일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벌이를 하며 나의 가치관과 나의 생각대로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솔직함을 넘어선 대담함과 의연함을 많은 경우 필요로 한다. 이를테면 나와 조직의 뜻이 맞지 않는 경우,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살라는 선배들의 얘기는 빈번하게 들었던 술자리에서의 일갈 중 하나였다.
자리를 보전할 수 있어야 경제활동의 지속이 가능한데 굳이 나서서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다자녀 외벌이 가장의 경우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 유익한 일자리는 무엇인가?
완벽한 일자리가 아닌 유익한 일자리에 대한 얘기임을 기억하자. 개인의 지향점과 조직의 지향점이 같이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의 경험이 스스로 희망하는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즉, 내가 이곳에서 몰입하여 일하는 것이 개인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면 돈을 받으며 진일보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석하기 나름으로 억지노력을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동반성장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것은 누군가가 정의 내리기 어려운 주제이다. 이것은 거의 느낌에 가깝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에 빠져들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끼며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붕 떠있는 기분을 선사한다. 이런 시간이 매일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내게 지극히 유익한 일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크기가 클수록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는데, 이런 때에 순간의 판단(어, 이게 아닌 건가?)을 경계해야 한다. 생각보다 이런 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이를 더디게 만들고 덫에 걸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지만 중요한 기초적인 작업들에 시간을 들이다 보면, 이내 멀리 보고자 하는 마음의 정비가 진행된다. 나의 기준대로 자리를 잡고 다시 구름 위를 걸을 수 있다면 열린 결말에 대한 희망을 갖고 걸어 나가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