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한 숟갈(Ep.03)
21살 진혁은 570번 버스를 타고 병무청 앞에 내린다.
곧 나라를 지키러 간다는 끄덕임의 몸짓과 함께.
하지만 그보다 먼저, 머지않아 키를 재야 한다는
사실이 고개의 끄덕임마저 짓누르곤 했다.
그 순간이 유독 숨 막혔던 건, 단지 수치를 재는
행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아마 진혁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쌓여온 말들이 어느 구석에
가지런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유, 그렇게 작아서 어디다 쓰겠냐?”
“군대는 제대로 가겠냐, 이놈아” 같은.
무심히 던져졌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말들.
명절이면 되풀이되던 잔소리와 흘긋한 어른들의 시선.
그 속에서 진혁은 점점 작아졌다. 자연스레 어깨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며 다녔다. 작은 키가 마치
자신의 전부를 정의해 버리는 듯했다.
진혁의 이름은 어릴 적부터 늘 출석부 맨 앞에 있었다.
키가 작은 순서였다는 웃픈 사실을 포함한 채.
그럼에도 처음엔 그 자리가 특별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짊어지기 싫어 내려놓고 싶은 짐가방을 맨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싶게 만들곤 했다.
물론, 입대 후에도 진혁은 좀처럼 당당하지 못했다.
군복을 입고도, 내무반에서도, 언제나 조용해
맨 뒤에 서곤 했다.
키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임에도,
그의 어깨는 좀처럼 펴지지 못했다.
그렇게 전역 후, 23살의 진혁에게는 생애
첫 여자친구가 생겼다. 진혁보다 아담한 그녀는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게 바라봐준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왜 자꾸 어깨를 구부리고 다녀!”
“지금 모습 그 자체로 멋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건데!”
“네 생각보다 너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야. 어깨 펴!”
그녀가 줄곧 했던 말들이다. 이에 진혁은 마음 깊이
흔들림을 느꼈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깎아내렸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사랑받을 수 있었는데…‘
그날 이후 진혁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을
다시 바라보곤 했다. 청바지 밑단이 끌려도,
그조차 ‘나답다 ‘며 호탕히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비율 좋네.’라는 너스레와 함께.
시간이 흐르며 진혁은 남들의 시선이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조금은 더
너그러워진 면모를 자주 보이곤 했다.
이제 24살, 진혁은 여전히 끌리는 청바지도
‘힙하다 ‘며 당당히 입는다. 그는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가장 멋진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작은 키조차도
그가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세상엔 참 다양한 고민이 있지만,
이상하게 키에 관한 이야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비슷한 온도가 존재하는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런 당신께 이 이야기를 조심스레 건네봅니다.
오늘도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