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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슬 Feb 20. 2022

0.프롤로그

꿈같은 휴가의 기록


<정리의 시간>


번개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긴 치료 끝에 환자의 질병이 소강기에 접어들었다던지 혹은 어떠한 마침표를 찍게 된다던지 그 어떤 상황이든... 다행스럽게도, 아님 허무하게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동시에 떠밀어진다. 그러면 어김없이 흐트러진 내 방 또한 눈에 들어온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은 방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어김없이 떠올리게 한다. 아직까지 불완전한 나는 모든 것에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어렵다. 다시금 정신을 끌어올려 정돈을 끝내면 나는 언제쯤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진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항상 제자리인 것만은 아니다. 방을 백 여번 치우는 동안 유년기를 졸업하고, 또다시 백 여번 치우는 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열 번 정도 치우는 동안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진료실에 놓은 작고 긴 강아지 필통은 정리하려고 꺼내 볼 때마다 소소한 즐거움이 된다.

수없는 정리의 도르마무는 어쩌면 에너지를 모으는 수행의 단계일지도 모른다. 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어떠한 지점까지 응축된 에너지는 다른 '차원'으로 흐르게 함이 분명하다고 미신처럼 되뇐다. 하지만 그 어떤 차원으로의 이동도 여행자 스스로 준비가 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준비'는 다시금 '정리'에서 결정지어진다. 방향성을 잃지 않고 정리의 시간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지금'에도 감사해야 하는데,  현재의 행복을 아는 것은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선의의 동반자 혹은 천사>



"구슬아~우리 다다(언니의 딸, 4살)가 크면 야옹(가명, 4살 벵갈)이가 분명 나이가 들어 죽게 될 텐데 그때 너무 슬퍼할까 걱정이야.."

친한 언니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언니. 나는 너무나 깊은 슬픔은 한 달 정도였구, 눈물이 주룩주룩 나는 순간은 두 달 정도더라.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서 힘이 들긴 하지만 나는 방울이(내 동생, 14살 반이었던 몰티즈)가 나와 함께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결론 내렸어. 다다도 결국 그렇게 철이 들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곁에 있어주어서 행복했다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제주에서 만난 한 여행객은 하쿠를 연신 쓰다듬으시면서 말했다. "저는 강아지가 너무 좋아요. 너무 순수하고 착하고 힐링이 되잖아요. 사람보다 나아요. 그렇죠?"

처음 보는 이 앞에서 '강아지가 사람보다 나음'을 강조하던 그분은 어쩌면 사람에 큰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원래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앞에선 그분의 눈빛과 언어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분의 말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든 이들은 마음속에 그들의 순수함과 근본적인 행복(서로 마주 보며 웃기, 서로를 아껴주기)의 위대함을 알고 있다.


동물병원에 근무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반려견과 반려묘와 그들의 보호자들과 만난다.

"손과 발과 말을 사용하지 않고 어디가 아픈지 표현해보시오."

라는 질문을 만나면 우리 모두 당황할 터인데, 대변인을 통해 진료하는 동물병원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순간'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에는 모두 한 마음이 된다. 나는 그런 동물병원이 좋다.


지나고 보면 제주에서의 시간은 인생 사이사이 있게되는 큰 정리의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더욱 빛내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나의 강아지, 하쿠였다. 쿠는 송편 같은 모양의 까만 눈과 촉촉한 코를 가진 시바견이다. 쿠도 각자가 그러하듯 사연이 깊은 멍멍이다. 우리는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냈고, 생각했고, 그 덕에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나아가기 위해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정리의 시간'에는 소중한 것들이 함께하면 더욱 좋다. 다음은 그래서 결국 함께하게된 우리가 정리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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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일기>


"길고 길었던 수학의 시간을 끝내고, 꿈같은 한 달이 주어졌습니다."

기록은 고유의 목적이자 순간의 노력으로, 꼭 한 번은 뒤돌아 보게 되지요.

기록으로 인해 삶의 모멘트마다 시간은 그 의미를 재탄생시키고, 발전하고...의미는 비록 무형이지만, 곧 존재하는 힘으로 다가올 파도를 지탱하고 이끌어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억 만들러 떠나요  우리!

출처:구글사진 + 편집/상당히 사진의 색감과 구도가 프로파간다-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 편집한 사람(네. 저입니다. 죄송합니다.)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렴 어때.일단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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