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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없는 운동회

duty free

by 작가님


아이들 운동회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인데 아빠가 없다. 3월에 연간 학사일정 받고 무조건 빼놓으라고 한 날 중 하나인데 갑자기 일주일 전 남편이 미국 출장이 잡혀버렸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데다가 아이들 운동회도 못 가고 모든 짐을 나한테 미뤄놓은 거 같아 미안해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남편을 보자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래. 뭐 자기 좋자고 출장 가는 건가?'

예전 같았으면 남편도 나도 서로 질세라 서로의 고충을 목소리 높여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웬일인지 생각보다 분노 데시벨은 높지 않았고 적당히 툴툴대고 토닥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됐다.


아침에 차를 가지고 갈지 대중교통으로 갈지 고민이 되었고 버스로 가는 게 나을지 지하철이 나을지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국 당일 아침밥 먹으면서 결정한 대로 버스를 타고 갔다. 생각 보다 버스는 여유가 있었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하며 갈 수 있었다.


마음 좋은 아이들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좋은 자리를 맡아주어 아이들 경기며 응원하는 모습이며 잘 볼 수 있었다. 목이 마를세라 커피까지 배달시켜주고 남편 없이 혼자 와서 심심할 세라 옆에서 계속 말동무를 해줬다.


아이들은 경기와 응원에 몰입했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전해져서 기쁘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부모님이 참여하는 경기, 예전 같으면 손사래 치고 안 나가고 남편한테나 나가라고 했을 텐데, 에도 나가고 아이에게 끊임없이 손을 흔들어 줬다.


아들과 딸이 청과 백으로 갈라져서 아쉬웠는데 다행스럽게 운동회는 무승부로 끝났다. 예상치 못한 비에 집에 어찌 가나 했는데 감사하게도 아이 친구 엄마가 집까지 태워줬다. 집에 돌아와 밥 먹고 오후 학원까지 잘 가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저녁에는 치킨을 시켜서 우리 셋만의 파티를 했다. 아빠 없이 일주일 너무 잘 지냈다고. 앞으로도 이렇게 의지하고 도와주며 즐겁게 지내자 했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화도 잘 안 냈다. 왜 그런 걸까? 남편이 가져올 면세품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고진감래. 결과가 좋을 걸 알면 과정이 즐겁지. 앞으로도 힘든 일 있을 땐 나 자신에게 선물도 주고, 좋다고 믿어야겠다.



#운동회

#면세품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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