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통해서 나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글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다. 이 글은 나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 닿아 위로가, 공감이, 힘이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알바몬 어플을 뒤적이던 중 취업연계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수강생을 뽑는 공고였고 날짜가 지나도 떠있는 것을 보니 OT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직무는 내가 전직장에서 잘하던 분야였다. 전직장을 그만둔지도 이제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 그 회사를 나올 때의 명분은 직무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 프로그램 속 직무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내가 잘하는 일인데. ‘하고 말이다. 이미 프로그램 과정은 시작한 날짜였지만 아직 공고가 올라와있으니까 일단 신청을 했다. 그것이 어젯밤이었는데 오늘 낮에 연락을 받았다. 수강생으로 들을 수 있다고 말이다.
전직장을 나올 때 정말 솔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직무는 나에게 맞는 일이었다. 마감기한에만 끝내면 되니 시간분배가 자유롭고 책읽고 정리 및 요약정리하고 문장을 다듬는 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일은 내가 자신있게 ‘잘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업무역량 밖의 일을 자꾸만 요구하고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한 상사가 나의 근무태도를 지적하면서 나는 회사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일 자체만 보면 나올 이유도 없던 회사였지만 나는 회사를 나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가만히 일만 하는데도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난 지쳤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회사 나오면 눈치보이고, 이젠 지친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가 해당 상사에게 들어갈 것이 보이고 나는 또다시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관심 있는 책이나 아이돌에 관련해서 출판사나 연예기획사 공고를 기웃거렸지만 부담만 더 커질 뿐이었다. 실제로 지원도 했지만 뽑을리 만무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직무 또는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고 적혀있으면 그 또한 지원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만두어야 했다. 내가 잘할 것으로 보이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사이클과 내 삶의 사이클이 잘 융화될 것 같지도 않았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걱정하는 엄마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이런 쪽으로 지원해서 이런 역량을 키우고, 이렇게 할 것이다. 라고. 그리고 스스로 계획도 정말 많이 세웠다. 자주 뒤엎고 자주 세우고. 나는 엄마에게 나를 향한 전폭적인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길 바랐다. 하지만 (잘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엄마는 못내 아쉬운 소리만 했다. 나도 내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계획을 세웠지만 생각처럼 잘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나의 초라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검색했다. ‘나 무언가 하고 있어요.’라는 그 말 한마디를 위해서 말이다. 금방 그만두고 말았지만 한 광고대행사에 붙었을 때 사실 가고 싶지 않았고 내가 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로부터 ‘너가 하고싶은 대로 해. 그리고 응원할게.’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엄마,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사실 너무 두려워.”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도 이런저런 조언을 주었는데 다시금 예전 회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너무 두려운데 그저 혼자인 기분이 들었다. 계획처럼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닌데, 불안한 마음에 애꿎은 계획만 세워나갔다. 하루 중 꼭 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서 잊지 않으며 예컨대 산책하기, 영양제 챙겨 먹기, 밥 꼭꼭 씹어먹기 같은 것들을 또렷하게 해내면서 이 삶을 어떻게든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하루 중 어느 날 밤 화장실 세면대에서 발에 비누칠을 하던 중 갑자기 갓난아기의 머리를 조심스레 감겨주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아니고 어디 미디어에서 본 건지, 문득 그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순간 나는 엄마에게 포근한 사랑을 느끼고 싶다고, ‘앞으로의 길을 정말 응원할 것이고, 넌 잘해낼 수 있어. 잠시 넘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어.’라는 말이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 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해서 보여줘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한 마음에 진정한 위로를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넘어지고, 무너지는 마음이 들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말이다.
오늘은 나에게 그저 괜찮다고, 약해질 때도 있는 거라고, 그 순간과 과정마저도 옆에 있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