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듕쌤 Aug 08. 2023

결혼 좀 안 하면 어때?

행복학 개론 3화.

우리 사회에서 정해준 인생 순서는 대학-취업-결혼-육아-내집마련 이다.


이 순서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해본 적 없기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잘 갔다.

취업, 그럭저럭 했다.

결혼...


여기에서 내 인생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인생은 이미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고, 결혼이 내 삶의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탈출구는 마치 솜사탕처럼 잡았나 싶으면 녹아버렸고, 입에 넣었나 싶으면 사라져 버렸다.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를 얻어냈던 내가, 처음으로 전 국민 대부분이 목표로 하고 거의 다 이루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 남들 다 하는 거 왜 나는 못 하는건데?!'


결혼을 해야 돼!


30대가 된 나의 일생일대의 목표는 결혼이 되었다. 어쩜 이리도 우둔한지.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고 그 목표를 이룬 뒤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 겪어놓고도, 취업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인생의 쓴맛을 뼈저리게 겪어보고도,


남들 다 하는 것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 인생을 망쳐버릴 목표를 세우고만 것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는 침식시켜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낙인찍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마치 진학과 취업을 하듯 결혼상대를 골랐다.


결혼을 잘 한다는 건 뭐지?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난다는 거잖아. 그럼 학벌이 좋은 사람 중에 골라야겠다. 아니야,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을 고르자. 그게 아니면 집에 돈이 많은 사람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고른 상대들은 나와 전. 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돈 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적당히 괜찮은 옷을 하나씩 사는 걸 즐기고 간식을 사는 데 돈을 쓰기는 했으나 늘 돈은 '아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좋은 결혼 상대, 능력 있는 남자들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명품 신발을 신고,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버는 만큼 비싼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일상 자체가 맞지 않으니 만남은 즐겁지 않았다. 돈을 펑펑 쓰는 그들 앞에서 매번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좋은 결혼 상대'라는 생각에 뭐든 맞추려 했고, 내 속은 썩어 문드러져 퀴퀴한 냄새를 풍겼지만 겉으로는 그럴싸한 옷을 입고 '괜찮은 사람'인 척했다.


만약 진짜로 그들이 "옛다. 이 정도면 됐다." 하며 덥석 나랑 결혼을 했다가 어떤 끔찍한 시월드가 펼쳐졌을지를 상상하면... 나와 결혼을 하지 않아 준 소개팅남들에게 감사하기까지 하다. 하하.


최근 브런치에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대체로 상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혼을 했다던지, 겉모습만 보고 결혼을 하고 일어난 결과라고 했다.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는 조건을 갖춘 남자들과 결혼을 한다고 행복한 삶이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아니, 오히려 행복과 반대로 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사랑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은걸?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계시를 받듯 머릿속에 뭔가가 번개처럼 팟-하고 들어왔다.


"내가.. 대체 왜.. 결혼을 목표로 한 거지? 그냥 함께 하면 행복한 사람을 만나면 되잖아. 결국 그걸 위해 결혼을 하는 거 아니야?"


최면에 걸렸다 깨어난 사람처럼 내가 왜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건지, 그동안 난 대체 뭘 한 건지 싶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짙은 안개가 걷히듯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말이 있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너무 짧잖아."


매번 남자친구와 싸우고 속상해하는 20대의 나에게 엄마가 해준 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만 보내도 짧은 인생에 남들 눈 신경 쓰느라 그럴싸한 남자들을 만나며, 정작 내 마음은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내 삶은 마음껏 사랑을 하겠다 다짐하며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또다시 결혼을 염두에 두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결혼을 하지 말란 소리가 아니야.


그렇다고 결혼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목표로 사람을 만날 생각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인생의 목표를 정할 때, 내 힘으로만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거야!

진짜 좋은 남자랑 결혼을 할 거야!

아이 셋 낳고 행복하게 살 거야!

내 자식은 의사를 시켜야지!


열심히만 한다고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진짜 좋은 남자가 내 앞에 툭 하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내 자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목표로 하면 사람은 쉽게 좌절을 맛본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나의 실패로 치기 때문에 실패의 경험만 늘어나게 된다.


목표는, 오직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만 정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서자.



결혼은 목표가 아닌 결과다. 결혼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을 멈추고 현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 내 짝은 나타난다.


적어도 한때는, 네가 인식하고 측정하려고 생각하는 것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사회의 가치가 진실인지 우선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따랐던 것들을 버리지 않고선 더 나은 미래는 만날 수 없다.




*메인 사진: 거듭된 연애실패, 장거리연애의 끝에 우울증을 극복하기위해 혼자 떠난 호주 여행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